곤도 마리에, 그녀의 배신
곤도 마리에 (Marie Kondo)
일본의 정리정돈 전문가로서 2011년 발간한 저서 <정리의 힘>이 전 세계 1,200만 부 이상 팔렸고, 2015년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 중 한 사람이었던 그녀. (그해 100대 인물 중 일본인은 단 2명뿐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2019년에는 넷플릭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통해 이름을 알리며 전 세계적으로 ‘곤마리식 정리법’ 열풍을 일으켰다.
넷플릭스에 나온 그녀의 정리법은 다음과 같다.
1. 물건을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 - 의류,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 (사진/기념품)
2. 모든 물건을 분류별로 모은 뒤 의류부터 순서대로 정리
3. 물건을 하나씩 안아보고 설레지 않으면 버리기
넷플릭스에서는 위와 같이 8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곤마리식 정리법’을 소개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조언대로 “설렘 (spark joy)”이 느껴지지 않는 물건은 하나둘씩 버리는 것으로 이에 동참했다.
1차 배신 - "KonMari.com" 쇼핑몰 오픈
그랬던 그녀가 처음 비난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건 바로 2019년 개설한 온라인 쇼핑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곤마리 샵”을 개설하고 '마리에에게 설렘을 주는 물건 125가지'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리라"고 계속 주장해 온 그녀가 이제는 "설레는 물건을 사라"고 나선 것이다.
그녀가 판매하는 물건 중에는 정리함이나 책 등 그간 주장하던 '정리정돈'과 일맥상통하는 것도 있었지만, 목욕 용품, 장식품 등 미니멀 라이프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물건도 쉽게 눈에 띄었다. 게다가 가격도 상당히 높아 넷플릭스 방영으로 얻은 인기에 힘입어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샀다.
이에 그녀는 본인은 무소유를 주장한 게 아니며 단지 설렘을 주는 물건이 아니면 버리라고 했을 뿐 설렘을 주기만 한다면 많은 물건을 소유해도 괜찮다고 반박했다.
2차 배신 - "난장판이 된 그녀의 집"
2023년 1월 말 그녀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집이 현재 "엉망진창"이고, 정리 정돈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라며 정돈 포기 선언을 했다.
이미 두 아이를 키우며 집을 정리된 상태로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2021년 셋째 아이를 낳은 후 정리에 대한 강박을 내려놨다는 것이다.
대신 완벽한 정리보다 일상의 행복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사에는, 그녀의 이러한 ‘고백’에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정리보다 일상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그 말 자체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임에도, 그녀가 누구였던가? 정리하는 삶, 비우는 삶을 통해 진정한 기쁨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던 사람 아니었던가.
물론 생각은 바뀔 수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어떤 배움이나 여러 계기를 통해 전과는 다른 방식과 믿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상황이 변했는데도 무조건 전에 믿었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그게 오히려 융통성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정리정돈 열풍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 작가, 정리정돈 컨설팅 기업 '곤마리 (KonMari)'의 CEO, 인기 넷플릭스 프로그램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녀가, 이제와 “정리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으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단순한 생각의 변화라고 바라보기만은 어려운 건 과연 내 생각이 편협해서일까.
그녀의 이름을 딴 ‘곤마리하다(to konmari)’는 정리를 지칭하는 동사로 사전에까지 등재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넷플릭스 방영후 그녀가 정리정돈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육아로 내 집은 이제 난장판"이라는 그녀의 고백이, 용기 있는 모습이 아닌 다소 무책임한 모습으로 보이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글은 <헤드라잇>에도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