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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Jun 02. 2023

흑인 인어공주, 나만 불편한가

다양성 vs 블랙워싱


배우 캐스팅 때부터 영화 개봉 전, 그리고 개봉 후까지 이렇게도 끊임없이 인종차별과 외모지상주의 논란이 계속된 영화가 있었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실사판이 개봉됐다.


논란의 주인공은 영화의 주인공, 애리얼 역을 맡은 배우 겸 가수인 '할리 베일리'다.


할리 베일리 (Halle Bailey)


논란의 시작은, 2019년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이 결정되었을 때부터였다.


당시 많은 대중이 이 캐스팅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디즈니는 이 쏟아지는 우려와 논란에도 대중의 의견을 존중하기는커녕, "애리얼이라는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며, 사람들이 할리 베일리가 원작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삼고 있다"는 대답으로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했었다.


하지만 애리얼을 그저 가상의 인물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어차피 가상이기 때문에 백인이든, 흑인이든 상관없다는 걸까? 하지만 원작 소설에는 다음과 같이 애리얼의 외모를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여러 명의 아름다운 인어공주 자매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외모,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 심해와도 같은 푸른 눈, 예쁜 하얀 다리(인간이 된 후), 장미꽃잎 같이 부드러운 피부를 가졌다.


ⓒ Disney


그저 "못생겼다"는 식으로 외모를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댓글은 나도 불편하다.


하지만 할리는 피부색을 떠나 외모의 어떤 점에서도 원작의 애리얼과 닮은 점이 없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그 하얀 피부, 푸른 눈의 애리얼을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흑인' 인어공주라 실망했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그들을 모두 싸잡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레게머리가 불편했던 건 '흑인 머리는 원래 레게머리'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알던 애리얼의 '빨간 머리'와 괴리감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작품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배우의 캐릭터化


영화나 드라마에 캐스팅이 결정되고 그 캐릭터를 온전히 녹여내기 위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배우들에게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역할을 위해 체중을 드라마틱하게 조절한 배우 '크리스찬 베일'


특히 '크리스찬 베일'은 작품에 맞게 체중 및 외모에 극적인 변화를 준 배우로 유명한데, 그는 영화 <머시니스트>에서 불면증에 걸린 캐릭터를 위해 무려 55kg까지 감량했다가, 6개월 후 영화 <배트맨 비긴즈>를 위해 다시 86kg까지 증량했고, 그 뒤로도 여러 번 맡은 캐릭터를 위해 엄청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본인이 맡은 배역을 그저 '연기'하는 걸 넘어서, 캐릭터에 따라 연쇄 살인마가 되었다가 불면증 환자가 됐고, 배트맨이 되었다가 약물중독자가 됐으며, 사기꾼이 되었다가 부통령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인어공주>에서는 할리가 애리얼이 된 게 아니라, 애리얼이 할리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어린 시절, 내 최애 만화영화는 <빨강머리 앤>이었다.

만화 영화 <빨강머리 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노래가 시작되면 언니와 함께 티비 앞에 앉아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며 만화를 시청하곤 했었다.


몇 년 전 로컬 소극장에서 빨강머리 앤 뮤지컬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나는 마음에 바로 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는 내가 알던 만화 속 앤보다 훨씬 통통했다. 그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너무 실망했고, 노래하는 목소리가 참 예뻤음에도 공연 내내 그 내용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빼빼 마른' 배우 대신 다소 '뚱뚱한' 배우가 앤을 맡은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이 소도시에서 아마도 노래와 연기, 그리고 외모까지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지는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연출자는 원래 캐릭터와 외모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대신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배우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번 흑인 인어공주 캐스팅은 최소한 그런 문제가 아니다. 외모와 실력까지 딱 들어맞는 인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양성을 고려하고 싶었으면 애초에 유색인종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만들면 된다. 알라딘이 그랬고 뮬란이 그랬다.


<콩쥐팥쥐>나 <흥부놀부>를 영화로 만들면서 뜬금없이 러시아인이나 프랑스인을 캐스팅한다고 해서 다양성이 증진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인어공주> 감독인 롭 마샬은 이러한 캐스팅 논란에 대해 "흑인 캐스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른 세기에서 온 것 같은 편협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원작과 너무나도 다른 싱크로율에 실망한 관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넣는 그가 오히려 편협하다고 느끼는 건 비단 나뿐일까.


적어도 나는, 오래도록 애리얼을 기다린 팬들의 그 큰 실망감을 충분히 알 것 같다.



#NotMyAriel



*이 글은 <헤드라잇>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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