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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May 27. 2024

어린시절 모습이 보기 싫어진 이유

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


캠코더가 한창 유행하던 90년대,


아빠는 언니와 나의 어린시절을 이 작은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주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그 테이프를 성인이 된 후에도 가족과 함께 보며 깔깔대던 때가 있었다.



근본 없는 요상한 춤을 추는 모습

앞니 빠진 채로 활짝 웃는 모습

외계어를 방출하며 낄낄대는 모습


차마 남들에겐 보여줄 수 없는 나의 흑역사마저도 가족과 함께 볼 때는 그저 같이 웃고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비디오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어린시절'이 아닌 '엄마아빠의 젊은시절'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후부터.




90년대 울 엄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도 여전히 아가씨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곱고 예쁜 사람이었다. 검은 생머리에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엄마는, 진한 화장 없이도 어딜 가나 '미인' 소리를 들을 만큼 미모가 뛰어났다.


우리 세 모녀가 나란히 모자를 쓰고 나가면 우리를 자매 사이로 보는 어르신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영원히 젊을 것 같던 엄마가 어느새 '아줌마'를 거쳐 '할머니' 소리를 듣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던 순간이 있었다.


출처: unsplash.com


90년대 울 아빠는,


지금 있는 통통배는 온데간데없고, 담배를 물고 카메라를 쳐다보는 눈빛이 다소 차갑게 보이기까지 하는 날카롭고 샤프한 '청년' 같은 사람이었다.


그랬던 아빠의 머리에 흰머리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어색해, 한국에서 보내주는 사진을 볼 때마다 울컥하던 때가 있었다.


출처: unsplash.com


그러나 이제 엄마는 손녀의 하원 및 놀아주기 담당을 맡은 빼박 할머니가 되었고, 아빠 역시 머리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할아버지가 된 지 오래됐다.


순수하고 철없는 어린 소녀였던 나도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엄마아빠라고 별 수 있을까. 그렇게 엄마의 주름과 아빠의 흰머리, 그들의 나이 듦을 인정하고 나니 많은 것이 편해졌다.


60년 넘게 쓴 몸인데 여기저기에서 고장이 나는 것도, 이래저래 병원 방문이 잦아지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니 슬플 일도 반으로 줄었다.



↓아픈 엄빠를 대하는 나의 태도변화

2018년 '걱정모드'에서 시간이 흘러 '농담모드'로 변하기까지


이렇게 나는,


엄마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냥 가슴 아파하던 시절을 지나, 그 당연한 일을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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