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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Mar 17. 2022

캐나다 이민 10년, 내 영어는 어디쯤 왔을까?


캐나다에 온 지 6개월 만에 첫 파트타임 잡을 구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한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커피숍.

사장님 부부는 필요한 물건을 공수해 오는 역할만 하시고, 가게는 캐나다인 매니저 한 명과 둘이 맡았다.


매니저는 주로 고객 응대와 커피 내리는 일을 담당했고, 내 주요 업무는 샌드위치 만들기였다.


그때만 해도 학원 선생님이나 홈스테이 식구가 아닌 '외국인'과 영어로 말을 한다는 게 얼마나 부끄럽고 자신이 없었던지... 나는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고객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으로 소통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주문 들어온 샌드위치가 없어서 딱히 바쁘지 않을 때도 나는 괜히 뭔가를 정리한다던가, 창고를 기웃거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최대한 바쁜 척을 하며 누구도 나한테 말을 걸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조금씩 들고 눈이 마주치면 "Hi" 하고 웃어 보이는 용기가 생겼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도 가게를   있는 여유가 생겼다.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을 했을 때는 처음부터 친근하게 다가가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감을 찾다가 또 한 번 자신감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전화영어' 인한 시련.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전화영어'는 진짜 어나더 레벨이라는 것을.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레스토랑과는 달리 호텔에서의 전화 영어는 그 내용이 너무 다양해서 전화가 울리면 늘 긴장이 됐다. 그래도 대부분의 고객은 내 영어실력이 좀 부족한 걸 알고 천천히 다시 말해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나를 도와줬고, 그렇게 전화영어에도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고객한테 전화가 왔다.


숙박비 할인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이었고, 나는 매뉴얼대로 설명을 했는데, 내가 본인 뜻대로 할인가를 제공하지 않자 그쪽에서 무언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의 말이 빨라졌고, 나는 더 긴장해서 점점 더 버벅거렸고, 그에 흥분한 고객은 내게 따다다다 쏘아붙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엄청 느리고 또박또박한 말투로 얘기했다.


I want to talk to someone WHO CAN SPEAK ENGLISH!



너무 모욕적인 말이었다. 내가 그때 하고 있던 말은 영어라고 할 수 조차 없다는 어투였으므로.


전화를 끊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의 그 상처가, 그때의 그 자극이 내가 영어 공부에 더 박차를 가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그때의 일을 지금도 가끔씩 떠올려 보는 이유는, ‘나도 그러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잘했다고, 잘해오고 있다고 다독이고 싶어서이다.


나에게도...

누군가 말이라도 걸까 봐 고개를 처박고 샌드위치만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전화영어가 어려워 누군가 제발 전화 좀 대신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하는 건 영어도 아니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후로도 계속 발전했고, 지금 나는 일상생활의 90% 이상을 영어로 소통하며 살고 있다.


오늘 문득 그런 나에게 그동안 잘해왔노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출처: unsplash.com


캐나다에 온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내 컴퓨터에는 여전히 다음 영어사전이 즐겨찾기에 추가되어 있다.


특정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회사 자료에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는 물론이고, 영어로 이메일을 쓰는 데 이왕이면 조금 다른 표현을 쓰고 싶어서 유의어를 검색해 보는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사전을 이용한다.


나는 늘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 10년, 혹은 20년 이상을 더 살아도 여전히 영어가 모국어처럼 편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영어공부는 아마  평생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는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


I am good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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