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눈을 찢어야만 인종차별이 아니다
당시 나는 캐나다에서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읽을거리 폭탄, 과제 폭탄에 어버버 하다 보니 1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2학기에는 경제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고, 수업은 유럽의 한 나라 출신의 교수가 맡았다.
첫 수업에서 앞으로 있을 과제, 시험 스케줄 등을 공지했고, 대망의 첫 과제로 한 경제학 논문을 읽고 리포트를 내는 일이 주어졌다. 그런데 이 논문이 워낙 이해하기가 어려워 교수도 여러 번 어려운 과제가 될 거라고 강조했고, 대신 전체 학점에 5%밖에 반영이 안 되니 너무 걱정 말라는 얘기를 덧붙였다.
당시 나는 1학기 수업에서 같은 팀이었던 D라는 친구와 제일 친했고, 우리는 과제 준비를 같이 하기로 했다.
리포트 제출까지는 3주의 시간이 있었고,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혹은 주말에도 만나서 논문을 같이 읽고, 서로 질문하고, 토론했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는 화이트보드에 개요를 짜 가며 흐름을 파악했고 그 후에는 각자 리포트 작성을 시작했다. 리포트 작성 중에도 중간점검은 물론, 완성된 후에는 서로 교환해서 읽어보며 피드백도 나눴다.
리포트 완성 후 D는 바로 제출한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과정이 더 남아 있었다. 나는 미리 예약해 둔 교내 영어 도우미 선생님을 만났고, 영어 문법, 스펠링 등을 교정받았다.
한 주쯤이 지나, 교수는 채점한 리포트를 나눠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겼는데 실망스러운 점수가 있었다. 65점.
점수를 되게 짜게 주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며 풀이 죽어 있는데, 그 교수는 첫 과제이니만큼 우리 반 학생들이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보여준다며 준비해 온 (익명의) 점수 분포표를 PPT에 띄웠다.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최저점 65점 - 2명
최고점 95점 - 1명
그리고 나머지는 그 사이에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내 리포트가 최저점이라고? 교수가 점수를 짜게 준 게 아니라, 내 리포트가 엉망이었단 거구나.
우리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논문을 이해했나 싶어 바로 고개를 돌려 D를 쳐다봤다. 그런데 D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최고점 95점 1명, 그게 바로 D였다.
그 친구가 내 표정을 보더니 "J, 점수 잘 안 나왔어? 설마 90점도 안 되는 거야?" 하고 묻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 올라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운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밖에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부분 학생들이 집에 가고 난 후에야 화장실에서 나와 후다닥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리포트를 다시 열어보니, 첫 문단부터 가관이었다. 빨간색 펜으로 스펠링 지적, 문법 지적, 여기저기 동그라미, 엑스 표시가 난무했다. 이게 무슨 추억의 '빨간펜' 교재도 아니고, 무려 대학원 수업에서 받은 피드백이라고 하기엔 너무 치졸했다.
이미 원어민한테 교정을 받은 리포트에 뭘 그렇게 고칠 게 많다고 여기저기 빨간 칠을 해 놓은 것도 불만인데, 혹시 좀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해도 그런 걸 조금 감안하고 내용에 집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영어학원도 아니고, 대학원의 교수라면 그랬어야 했다. 논문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떤 대안을 제공하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이 과제의 핵심은 그거였는데, 정작 그에 대한 피드백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완전 엉망인 리포트를 제출했다면 최저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랑 같이 과제를 한 D가 최고점을 받았다는 건 다시 말해 내용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신랑을 보자마자 또 눈물이 왈칵 터졌다. 학교에서 났던 눈물은 낮은 점수에 대한 속상함 때문이었다면, 집에서 난 눈물은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싶은 절망감의 눈물이었다.
5%밖에 반영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3주를 꼬박 바친 결과물이었다. 내 영어가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원어민한테 도움도 받았고, 내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결과물에서 최저점을 받았다는 건, 남은 대학원 생활은 물론 캐나다에서의 미래조차 어두워 보이는 절망적인 느낌이었다.
“호기롭게 대학원까지 왔는데, 내가 너무 무모했던 걸까? 혹시 이민자로서 이런 일을 겪는 게 흔한 일이라면 나는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루가 지나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됐다. 같이 과제를 한 D는 최고점을 받았다. 교수가 내 리포트를 끝까지 읽기나 한 걸까?
고민을 좀 하다 결국 교수를 찾아갔다. '도대체 내 리포트를 보기는 본 거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한번 더 봐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D와 같이 논문을 읽고 개요를 짰음을 말씀드렸고, 전체적인 흐름이나 결론 부분에서 크게 엇나간 부분이 있다면 피드백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는 다시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틀 후 수업이 끝난 후 교수가 나를 따로 불렀다. 다시 읽어봤고, 내용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점수를 바꿔줄 순 없다는 대답이었다. 아마 이미 학과에 제출한 점수를 수정하려면 귀찮은 추가 프로세스가 있었으리라.
허탈했다. 며칠을 마음고생하며 기다렸는데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추정컨대, 그 교수는 내 리포트를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만점을 줘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최저점을 줘야 했겠지. 그렇다면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이름 있는 회사에서 꽤 오래 일한 경력도 있던 D와 그저 '아시아에서 온 어떤 여학생 J' 중 누군가한테 최저점을 주기가 더 쉬웠을까?
D와 J가 친하다는 것도, 그 두 사람이 리포트를 같이 준비했다는 것도 전혀 몰랐겠지.
아시아인은 보통 조용하고 '순종적'이라는 데 내가 그렇게 찾아가서 재 검토를 요구할 줄은 몰랐겠지.
그런데 그때 내가 그 교수를 찾아가서 "제 리포트 한번 더 봐주세요" 했던 일은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 되었다.
그 뒤로 내가 제출한 어떤 리포트에서도 빨간펜 선생님은 없었고, 대신 ‘진짜 피드백’이 돌아왔다. 점수도 늘 공정하게 (혹은 심지어 후하다고 느낄 정도로) 받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좋은 학점을 받는 건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수업에서의 A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할 말을 하고 당당하게 맞서 쟁취한 결과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꼭 인격 비하하는 말이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해야만 인종차별이 아니다. 꼭 눈을 양쪽으로 쭉 찢어 보이거나, “Go back to your country!” 같은 모욕적인 언행을 해야만 인종차별이 아니다.
선입견에 따른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그로 인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 또한 인종차별이다.
인종차별은 하는 사람이 문제지, 당하는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있다. 상당히 많은 경우 가해자는 자신의 언행이 인종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조차 모를 때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바로 발끈해서 "너 완전 인종차별주의자구나!" 흥분해서 대꾸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신 현명한 방법으로 그 사람의 얘기가 상대방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음을 알게끔은 해야 한다.
그래야 배운다. 그런다고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최소한 "몰라서 그랬다"는 말은 덜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