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과 답답함 그 사이 어딘가
IT 강국, 새벽배송, 하루배송 등 "이미 빠른 서비스"가 점점 더 빨라지는 한국과 달리, 이곳 캐나다는 서비스의 '속도' 면에서는 내가 처음 캐나다에 온 10여 년 전과 비교해 2022년인 지금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우버나 Skip the dish 같은 배달 서비스가 좀 더 보편화되었다는 점인데, 이것 역시 한국처럼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경우보다, 대부분 차로 배달하기 때문에 한국 같은 빠른 배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하나 설치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어요.
물품 배송을 하면 최소 몇 주 이상은 기다려야 해요.
필요한 서류를 떼는 등 공공기관의 서비스를 받는 것도 얼마나 느리고 답답한지 몰라요.
이런 얘기는 캐나다뿐만이 아니고, 유럽이나 다른 쪽 나라로 이민을 가신 분들에게도 많이 들었다. 이런 “기다림 (혹은 인내심테스트)" 에피소드는 한국에서만 생활한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 말도 안 된다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기본 마인드에 "빨리빨리"가 없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도 여유를 갖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점은 내가 서비스 제공자가 되었을 때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캐나다의 느린 서비스에 여러모로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최근에 겪었던 한 에피소드는 이민 생활 10년 차인 내게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일이었다.
작년 초 생리불순이 시작됐다.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때라 잠시 지나가는 현상이려니 생각했는데, 4월 초에 시작된 생리가 2주가 넘도록 멈추질 않았다. 심지어 평소보다 양도 많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다른 증상은 딱히 없었지만, 가뜩이나 철분 부족에 저혈압인 내가 많은 양의 피를 흘리니, 기력이 없고 늘 피곤했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각종 검사받기 대장정
4월 중순: 간호사 혹은 의사와 전화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다. 간단한 문진 후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알려 줬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의사를 직접 만나 필요한 검사를 받아 보라고 조언해줬다.
4월 중순: 패밀리 닥터 오피스로 전화를 해 우선 전화 예약을 잡았다. (당시는 코로나로 모두가 조심하던 시기라 의사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을 때만 클리닉으로 방문을 요청했다. 그 외 모든 서비스는 우선 전화를 통한 문진으로만 이루어졌다.)
4월 중순: 의사와 통화 - 문진 후 클리닉 방문이 필요하다고 하여 4월 말로 예약 잡음.
4월 말: 클리닉 방문 - 몇 가지 더 자세한 문진 후 피검사, 초음파 검사, 자궁경부암 검사 세 가지 검사를 처방받았다. (이 검사들은 또 각각 다른 기관 혹은 병원에 가서 받아야 함)
4월 말: 피검사 - 이상 없음
5월 초: 초음파 검사 - 이상 없음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이 (생각보다 빠르게) 잘 진행이 된다 싶었는데, 문제는 자궁경부암 검사였다.
예약이 몇 달 이상 꽉 차 있어 제일 빠른 예약 가능일이 10월이라고 했다. 여기서 1차 멘붕.
그 사이 이미 5주간 지속되던 생리는 다행히 멈추고, 원래 사이클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사는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10월 중순으로 예약을 잡았다.
10월: 드디어 자궁경부암 검사받으러 감 -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을 나오니, 프런트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미리 인쇄된 작은 종이쪽지를 하나 건네준다.
결과는 약 4개월 후 2022년 2월에 나옵니다. 결과가 나오면 저희가 전화드리겠습니다.
4개월?? 4주 아니고? 뭔가 인쇄가 잘못되었나 싶어 안내해주시는 분한테 다시 물었다.
"여기, 4개월 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이거 맞나요?"
"아, 네, 저희가 원래 6-7주 정도 걸리는데 (마치 6-7주 정도"밖에" 안 걸린다는 말투로), 지금 코로나 때문에 너무 많이 밀려 있어서 시간이 추가로 필요해요. 4개월 맞습니다. 내년 2월에 전화드릴게요."
'하아..... 혹시 문제라도 있으면 4개월 동안 문제를 그냥 키우는 거구나.' 생각은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그리고...까맣게 잊고 지내던 2월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O 클리닉입니다. 저번 자궁경부암 검사 결과가 나와서 연락드렸어요."
"아, 네,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조마조마)"
"이상 없으십니다. 끝-"
무려 4개월을 기다린 전화치고는 너무나 간결한 대답이라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이상 없다는 데 뭐. 그쪽도 할 말이 없고, 나도 더 할 말이 없어, 오래 기다린 그 전화는 땡큐 인사와 함께 2분 만에 끝이 났다.
처음 예약을 잡던 5월부터 치면 장장 10개월이 걸린 자궁경부암 검사받기 대장정이었다.
캐나다에 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루배송? 당일예약? 이런 거는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음식 배달 서비스도 많이 보편화되고, 아마존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며칠 만에 오는 경우도 많아, 늘 "빨라진" 서비스에 감탄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비교적 간단한 검사 하나로 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진짜 이건 너무한다 싶었다.
느려도 너무 느린 나라, 캐나다.
그래도 어쩌겠니? 내가 널 선택했는데. 단점까지 안고 같이 잘 지내볼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