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실판 '애순이와 관식이'

by JLee


브런치에서 사랑 얘기는 하지 말라 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에 관심이 없으며, 그런 글로는 조회수도, 구독자수도 얻기 어려울 거라고.


그도 그럴 것이,


결혼보다는 이혼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사랑보다는 갈등이


늘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었기에, 그런 공간에서 내 남편의 변함없는 따뜻함과, 그를 향한 나의 무한한 애정을 말하기란 더더욱 조심스러웠고, 또한 우리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여나 그의 이 보석 같은 마음에 생채기가 날까 두려워 직접적인 얘기는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의 ‘결혼 13주년‘을 기념하며, 그간 못했던 얘기를 이 글에 남겨보려 한다.




십수 년 전, 가족과 떨어져 이방인으로 사는 이곳에서, 그저 밥 벌어먹고사는 것 이상의 삶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때가 있었다.


그 보잘것없던 시절부터 나의 끊임없는 배움과 성장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를 나보다 더 믿어줬던 사람이 그였다.



수입이 없어 남편이 주는 생활비에 100% 의지해서 살던 시절, 그 돈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살뜰 모았다가 이사 갈 때 내놓으니, 와이프 덕분에 큰 집으로 이사 간다며 "모두 다 네 덕"이라고 말하는 사람.


술, 담배 일절 안 하고, 매일 새벽 5시 알람이 울리면 내가 깰까 조심조심 침대에서 나와, 전날 미리 싸놓은 도시락 들고 혼자 조용히 출근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칼퇴 후 귀가하는 사람.


늘 따뜻한 물을 마시는 나를 위해,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수시로 내 텀블러를 확인하고, 내가 딱 좋아하는 온도에 맞춘 물을 항시 채워놓는 사람.


재택근무하는 와이프 라면으로 점심 때울까, 매주 일요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짜장, 미역국, 잡채, 홍소육, 카레, 등갈비찜 등등 돌아가며 한솥씩 끓여놓고 출근하는 사람.


문득 내 장난기가 발동하는 날, 하루 종일 남편 뒤꽁무니 쫓아다니며 이름을 열 번 스무 번 불러도 짜증 한번 안 내고 다 대답해 주는 바보 같은 사람.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재밌다는 사람.


FFD27DE7-747E-4AFC-A6DF-7E1D50D5CCD7.png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참 한결같다 그 사람은.

무얼 하든 항상 내가 1순위니까.




<나는 솔로>, <돌싱글즈>, <환승연애> 등 연애프로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 달달한 연애 시절을 지나고 어렵게 결혼에 골인하면, 얼마간 <동상이몽> 시절을 보내다가 급기야 <이혼숙려캠프>에 입성하는 게 마치 피할 수 없는 인생 루트처럼 되었다.



조금만 자상하게 해 줘도 “00동 사랑꾼” 같은 타이틀로 도배하는 뻥튀기 방송, 혹은 폭언, 비난, 무시, 무관심으로 점철된 결혼 생활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자극적인 방송들이 판을 치는 요즘, 서로를 배려하며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씁쓸해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모양과 방식은 다를지라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소박하고 평범한 부부들도 많다고 믿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