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날이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고, 뜬금없이 내게 돈을 좀 주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것도 무려 천만 원씩이나.
갑자기 무슨 돈인가 싶었는데,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엄마한테 용돈 명목으로 드렸던 돈과 그 외 자잘한 것들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아 놓으셨단다. 그 돈을 언젠가는 돌려주고 싶었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고.
그 돈 필요 없다고 안 받겠다고 하는데, 언니한테는 더 큰돈을 이미 줬단다.
나한텐 천만 원, 언니한텐 이천만 원.
계산은 간단하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잠깐 회사를 다니다 이십 대 중반 캐나다로 왔다. 그와 동시에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했고, 커피숍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며 번 돈으로, 매달 나가는 학비며 월세며 감당해 내느라 부모님께 드릴 용돈은 꿈도 못 꿨다.
반면 언니는 삼십 대 후반 시집을 갈 때까지 쭉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았다. 언니가 드린 용돈의 액수가 훨씬 더 큰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돈 얘기가 나왔을 때에는 남편과 나 둘 다 이미 자리를 잡은 데다, 아이 없이 둘만 사는 살림이다 보니 더더욱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은 후였다.
엄마 쓰라고 준 돈인데 그걸 굳이 돌려주겠다는 엄마를 말리고 또 말렸지만, 엄마가 이미 그렇게 결정을 한 이상 받기는 해야 할 것 같다고 남편과 얘기하며, “아휴, 우리 엄마 참 못 말려” 농담도 했다.
그런데 그 일이 결국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언니가 엄마한테 더 많은 돈을 용돈으로 드린 건 그만큼 오랜 기간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고, 엄마가 깨끗이 빨아준 옷을 입고, 엄마가 청소해 주는 안락한 집에서 언니는 나보다 꼬박 10년을 더 살았다.
같은 시기 나는 이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았던가. 특히 유학 생활 초반에는 매달 벌어 그 돈으로 생활비와 월세를 내고 나면 적금 하나 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빠듯했다. 남편을 만나 생활이 안정화된 후에도 여전히 학비에 대출금에 둘이 열심히 아껴 살던 시절이 있었다.
언니한테 가는 이천만 원이 아까워서도 아니었고, 내가 받는 액수가 적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 돈의 차이가 마치 그간 엄마 아빠한테 효도한 값으로 여겨진다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남편과 그 얘기를 하며 얼마나 울었던가.
"나는 이 돈 안 받고 싶어. 언니한테 이천만 원 준 것도 그냥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 싶어. 나 엄마한테 용돈 덜 드린 것 아니고 그만큼 더 일찍 독립해서 열심히 산 건데, 그 애쓴 시간은 쏙 빠지고 그냥 언니보다 용돈 덜 드린 사람이 되었어."
그리고 결국 그 얘기를 엄마한테 했고, 그 얘기는 또다시 엄마에게 상처가 되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툭하면 야근하는 딸들이 한없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우셨을 우리 엄마, 그들이 매달 용돈이라고 내민 봉투를 감사히 받아 그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열심히 모았다. 어느 날 짜잔-하고 그 돈을 내밀면 "꺄- 엄마 고마워!!" 하고 기뻐할 우리들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런데 둘째 딸 요것이 왜 그동안 자기 고생한 건 안 알아주냐며 지 억울하단 얘기만 하니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겠지.
결국 이 일은 엄마랑 몇 번이고 더 감정이 섞인 대화를 하고, 아빠도 중재자로 나서며 일단락이 됐다. 실제로 한국에 가서 엄마를 만날 즈음에는 이미 감정이 많이 정리된 후였고, 그 귀한 천만 원을 봉투에 잘 담아 캐나다로 고이 모셔 왔다.
하지만 당시 내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였을까.
그때 나는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의 말에도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을 와르르 쏟아낼 만큼 약해져 있던 때라 그 천만 원 사건은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머리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더라고 그 이해가 그 깊었던 상처를 단번에 아물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찌꺼기처럼 남은 감정을 가슴 한쪽에 달고 살아가던 어느 날.
남편과 드라이브를 하던 중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오래 치과 신세를 졌었는지 신나게 얘기하던 날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했던 교정을 무려 고등학교 1학년 유지장치를 뺄 때까지 5년을 넘게 했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순간 뭔가에 탕 하고 맞은 것처럼 헉!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맞아 그랬네! 나 그 교정하는 동안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알아? 아니, 사실 나는 모르지 얼마나 큰돈이 몇 년 동안이나 나갔을지. 울 언니는 튼튼하고 고른 이 덕분에 교정 안 했는데.
그것뿐이야? 생각해 보니 대학교도 울 언니는 4년 장학생으로 갔다. 학교에서 용돈도 줬었나 아마? 암튼 4년 동안 학비는커녕 생활비도 별로 안 들었는데 나는? 4년 동안 그 흔한 장학금 한번 못 받았고, 그 학비는 고스란히 엄마아빠 몫이 되었다.
그 돈만 다 계산해도 그게 얼마야. 대충 계산해도 몇 천만 원은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울 언니는 이런걸 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을까?
남편한테 그 얘기를 하며 눈물을 또 한바탕 쏟았다.
나만 받은 혜택에 한 번도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던 언니한테 고맙고
엄마 마음도 몰라주고 내 다친 마음만 바라봤던 그 시간들이 너무 미안해서
이제라도 말하고 싶다. 엄마 마음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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