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란?
PWC (삼일), KPMG (삼정), Deloitte (안진), EY (한영)의 세계 4대 회계법인으로 "빅4"라고 부른다.
회계감사와 세무 업무 외에도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하며, 많은 신입 회계사들이 빅4에서 경력을 쌓는 걸 희망한다. 워낙 업무량이 많아 일이 힘들기로 유명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매년 가을 (9월~10월)에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이때 뽑히는 신입은 그다음 해 가을에 입사하게 된다. 다시 말해, 2022년 9월에 입사 지원 및 합격이 되면 2023년 9월경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1년 전에 미리 신입을 뽑는 시스템 때문에,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걸 희망한다면, 대부분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미리 준비해서 4학년으로 올라가는 시점에 (캐나다는 9월 학기 시작) 입사지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이미 졸업한 후였고 한시라도 빨리 경력을 쌓아야 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빅4 공채 대신, 채용 과정이 조금 더 유연한 로컬 회계법인을 타깃으로 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빅4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에 미리 겁을 먹은 것도 사실이다.
구글에 검색하니,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로컬 회계법인이 나왔다. 각 회사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회사 정보, 파트너 숫자, 직원 프로필 같은 정보를 찾아보며 나름의 기준을 통해 입사 희망 순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중 채용 공고가 나와 있는 회사에는 이력서를 보냈다. 하지만 한 군데서도 답이 오지 않았다.
전략을 다시 짜야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몇 군데 회사 웹사이트에서 직원 프로필을 보고 그중 몇 분한테 이메일을 보냈다. 간단한 내 소개와 함께, 정보를 조금 더 얻고 싶은데 커피 한잔 하면서 얘기할 시간 있으시냐는 내용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두 분한테 긍정적인 답이 왔다.
그중 한 분과는 커피숍 미팅 후, 파트너와 인터뷰 자리까지 마련이 됐다. 인터뷰가 꽤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메일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무슨 자신감인지 파트너 번호로 전화를 해서 10분만 시간을 내달라 정중하게 부탁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꼭 필요하다며 최대한 솔직한 피드백을 부탁드렸는데,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나에게 큰 "하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파트너의 얘기에 의하면, 대부분의 회계법인이 신입을 뽑을 때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회계와 관련은 없지만) 이미 몇 년 일한 경력도 있었고, 무엇보다 대학원 졸업생이라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현재 나에게 없는 걸 채우는 것만 문제가 될 줄 알았는데, 이미 나한테 있는 게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면 어찌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됐다.
이력서에서 대학원 졸업 내역을 뺄 수는 있다. 그런데 그 공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내가 대학원 공부를 통해 배운 모든 경험들도 나의 일부인데 그걸 통째로 빼고 싶지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나한테 처음으로 회계사가 돼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줬던 교수님을 찾아갔다.
“회계법인에 입사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되질 않는다, 심지어 대학원 나온 게 발목을 잡는 것 같다”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빅4 중 하나인 회사 이름을 대며, 거긴 지원해 봤냐고 묻는 게 아닌가. 참고로 교수님도 그 회사 출신이었다.
아니, 지금 규모가 작은 로컬 회계법인에서도 인터뷰 한번 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빅4에 지원해 보라니! 나에겐 넘사벽이라고 생각해서 그동안은 용기도 못 냈던 일이었다.
교수님은 본인의 예전 동료 중 하나인 파트너 S의 연락처를 주며 연락을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날 집에 와서 바로 이메일을 보내면서도 사실 답장이 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워낙 큰 회사였고, 매니저 직급도 아니고 파트너 레벨이라면 이런 이메일 정도는 무시하고 넘어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답이 왔다, 나를 만나 주겠다고. 약속한 날 최대한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그 분을 만나러 갔다.
무조건 "뽑아주세요" 하는 얘기보다, 그냥 내 얘기를 했다. 최대한 진심을 보이고 싶었다.
마침 그 회사는 직원을 한 명 뽑고 있었는데, 이미 지원자가 많았지만 나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서류 면접과 전화면접을 무사히 통과하고, 최종면접 초대 이메일을 받았을 때는 이미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기뻤다.
최종면접 날 회사로 가니 나 외에도 4명의 지원자들이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로비에 앉아 있었다.
면접은 총 2시간 동안 진행이 됐다. 2명의 파트너, 1명의 매니저와 각각 30분씩 일대일 면접을 했고, 중간에 선배 한 명과 오피스 투어를 하며 잠깐 쉬어가는 시간도 일정에 있었다.
면접을 하고 오니 아쉬운 부분만 계속 생각이 났다. ‘질문에 좀 더 똑 부러지게 대답할 걸, 그때 말은 왜 그렇게 버벅거렸지?’ 후회만 가득했다.
그래도 이 어려운 경쟁에서 최종면접까지 갔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단하다고, 잘했다고 생각하며 떨어져도 너무 실망하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 파트너 S한테 직접 전화를 받았다.
합격이었다!
*이어지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