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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Feb 07. 2022

밴쿠버 공항에서 짐 잃고 울 뻔한 사연

국제미아 될 뻔


한국에서 캐나다 빅토리아를 오려면 한 번에 직항으로 오는 비행기는 없고, 밴쿠버에서 한번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이때, 밴쿠버에 내리면 일단 짐을 찾고, 그 짐을 최종 도착지인 빅토리아로 다시 부쳐야 하는데 나는 여기서 두 가지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첫째, 짐을 찾았다 다시 부쳐야 하는 줄 몰라서 캐러셀을 그냥 지나쳤다는 것.

둘째, 비행기를 '갈아타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그냥 밴쿠버 입국장을 통해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것.

(이건 내가 영어를 못해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Transfer'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어버버 하다가 일어난 어이없는 실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밴쿠버 공항 입국장에 작은 배낭을 하나 달랑 맨 채로 서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내 짐은 어디 있지?', '나는 이제 어떡하지?' 멘붕이 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 헬프데스크로 보이는 곳에 가서 떠듬떠듬 상황 설명을 하니, 내 얘기를 들은 직원이 딱 봐도 '황당 +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게 뭐가 꼬여도 한참 꼬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 - 비행기에서 내리면 일단 네 짐을 찾아서 환승구 쪽으로 갔어야지, 이렇게 그냥 나와 버리면 안 되는데...


나 - 그럼 제가 나온 저기 저 문으로 다시 들어가면 안 될까요?


직원 - 놉! 이미 이렇게 나온 이상 보안 규정상 네 마음대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어.


나 -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이미 울기 직전)


직원 - 어느 항공사 비행기 타고 왔니? 에어캐나다? 그럼 저기 공중전화로 에어캐나다에 전화를 해서 상황 설명을 하고, 누군가가 게이트로 나와서 너를 데리고 들어가야 할 거야. 굿럭!



순간 두 번째 멘붕이 왔다.


공중전화는 무슨 돈으로? 나 동전 없는데ㅠㅠ
이걸 다 영어로 설명하라고? 나 영어 못하는데ㅠㅠ
이러다 비행기 놓치면 어떡하지? 빅토리아 공항으로 홈스테이 아저씨가 마중 나와 있겠다고 했는데ㅠㅠ


그런데 사람이 막상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다 하게 되어있나 보다. 일단 동전을 조금 빌리고 (물론 갚을 기회는 없었다), 헬프데스크 직원이 알려 준 번호로 전화해서 어찌어찌 설명하고 조금 기다리니, 저 쪽 문에서 에어캐나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후광을 비치며 걸어 나왔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저 좀 도와주세요오오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방 하나 매고 서 있는 모습이 딱 봐도 국제 미아같이 보였는지 그분도 나를 쉽게 알아보더니, 다행히 이것저것 더 묻지 않고 나를 인도해서 다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짐 찾는 곳 쪽으로 서둘러 가 보니, 텅 빈 캐러셀에 내 가방만 덩그러니 돌고 있는 게 아닌가. 내 가방을 보는 순간 나는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저지른 내 실수에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그렇게 밴쿠버 공항에서 천사를 만나 도움을 받고 나는 무사히 빅토리아로 가는 작은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다.


빅토리아 공항에 도착하자 미리 신청해 둔 홈스테이의 호스트 아저씨가 내 이름과 "Welcome" 사인이 쓰인 종이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저씨 얼굴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르겠다.




빅토리아의 첫인상


빅토리아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작은 도시였는데,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원래라면 게이트 안에 있어야 하는) 캐러셀이 게이트 밖 공항 출입구 바로 옆 쪽에 있다는 것이었다. 게이트 밖에는 여행자나 마중을 나온 사람들 외에도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짐을 들고 가면 어쩌려고 이렇게 밖에 캐러셀을 설치해놨나 하는 생각에 순간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런 걱정은 빅토리아에 한 달쯤 살면서 금방 이해가 됐다. 그만큼 안전하고 사건사고가 없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홈스테이로 지내게 될 집으로 와서 나머지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내 방을 소개받았다. 그 집엔 홈스테이 아주머니, 아저씨 외에도 중국에서 온 친구, 멕시코에서 온 친구, 이렇게 두 명의 홈스테이 학생이 더 있었다. 모든 식구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얘기를 좀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긴장,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하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펼쳐질 캐나다 생활에 대한 설렘으로 첫날은 잠을 설쳤다.



Welcome to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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