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Lee Feb 11. 2022

캐나다 홈스테이에서 겪은 Emergency

그거 캐나다 문화 아니야


캐나다 빅토리아 도착 후 다음날은 홈스테이 아저씨 도움으로 이것저것 준비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버스 티켓 사는 법과 버스는 어디서 타고 내리는지를 배우고, 연습 삼아 앞으로 다니게 될 어학원까지 같이 버스로 가 보자고 하셨다. 미리 인사도 할 겸 들어가 보자는 말에 바짝 긴장해서 들어간 학원에서 오피스 직원들을 처음 만났다. 다들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당시 그곳에서 학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던 한국 직원이 익숙한 한국어로 건네는 인사가 그렇게 반갑고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한국사람 최대한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던 패기는 어디 가고, 모국어로 듣는 환영 인사에 바로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아니 뭐, 조금 도움받는 건 괜찮잖아?)


그렇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언니가 앞으로 내 캐나다 생활의 최고 단짝이자 평생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것을. 




어학원 생활은 즐거웠다. 레벨 테스트 결과 총 6개의 레벨 중 나는 레벨 5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


한국, 일본, 독일, 멕시코, 브라질, 사우디 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한 반이 되어 수업을 했고, 나이도 문화도 관심사도 다 다른 우리였지만, 우리 모두 broken English (엉터리 영어)를 쓴다는 공통점이 있어 같이 틀려가며 배우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학원에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English Only” 규정이 있어, 수업 시간 외에도 늘 영어만 쓰게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나같이 열정 가득한 학생에게는 너무 마음에 드는 규정이었다.


학원이 끝난 후에도 나의 영어 공부는 계속됐다. 홈스테이 가족들이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을 고려해 쉬운 말로 천천히 얘기해주긴 했지만,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대로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다양한 가족 행사에도 늘 가족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할로윈에는 코스튬을 입고 동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 을 외쳤고, 땡스기빙과 크리스마스에는 캐나다 식으로 칠면조 요리도 먹고, 선물 교환도 하는 등 많은 추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처음 맞은 땡스기빙 - 홈스테이 마미와 거실 소파에서 기념 사진 한 컷
크리스마스에는 작은 선물 여러 가지와 카드 등을 받았다




홈스테이 아저씨 (라고 썼지만, 사실 같이 살 때는 엄마 아빠 - mom & dad라고 불렀다)는 같이 사는 다른 홈스테이 학생들보다도 나를 유독 아꼈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막 캐나다에 온 사람이라 특별히 더 신경 써 주시나 보다 했는데, 옆 방을 쓰던 중국 친구와는 확연히 다르게 나를 대하는 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어땠는지,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더 많은 질문을 내게 해 줬고, 식사 시간에도 더 신경 써서 챙겨주는 듯했다.


그리고 나를 핑계만 있으면 안아줬다. 


참고로 캐나다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끼리 만나고 헤어질 때 늘 안아주는 Hug 문화가 있어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침에 잘 잤냐고 한번, 학원에 잘 갔다 왔냐고 한번, 잘 자라고 한번 등 하루에도 여러 번씩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핑계 등으로) 나를 포옹하는 것이었다. 나는 홈스테이 아저씨가 유독 사랑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다른 홈스테이 학생들하고는 달리 나한테만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거실에서 홈스테이 아주머니와 TV를 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랑 얘기하며 TV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2시간 가까이 흘러 있었다. 나는 아차 싶어서 얼른 옷을 꺼내러 세탁실에 갔는데, 세탁기가 텅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공용 세탁기였기 때문에, 혹시 누가 내 옷을 꺼내다 내 방으로 옮겨놨나 싶어 재빨리 방으로 돌아와 보니, 내 옷이 그냥 바구니에 닮겨 있는 게 아니라, 행거에 하나하나 널려 있었다. 티셔츠, 바지, 양말 등은 물론이고, 내 속옷까지 전부 다. 하아…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나랑 내내 같이 있었으니 아주머니가 그랬을 리는 없지만, 혹시 해서 여쭤보니, 자기는 아니고 아저씨가 그랬나 보다고 덤덤하게 얘기한다.


너무 불편했다. 내가 어느 정도 큰 후로는 우리 아빠도 내 속옷을 만지는 일이 없으셨는데, 아주머니도 아니고 아저씨가 내 속옷까지 하나하나 꺼내서 널어놨다는 게 소름 끼치게 싫었다. 그런데 싫다고 내색하기가 힘들었다. 그 외에는 정말 잘해주시고 있었고, 나 역시 홈스테이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니면서 싫은 건 바로 싫다고, 아닌 건 바로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용기를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게 어려웠나 보다.)


그러다가 당시 ESL 과정을 다니던 대학교에 성희롱 관련 상담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고민을 하다 찾아간 자리에서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혹시 많은 허그를 하는 게 캐나다 문화라면 내가 괜한 오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걸 제일 알고 싶었다.


"아저씨가 나랑 하루에 세 번씩 허그를 해. 이거 캐나다 문화야?"


내 얘기를 듣던 상담사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기도 자기 부모님과 그렇게 하루에 몇 번씩 허그하지는 않는다고. 그거 캐나다 문화 아니라고.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또 바보같이 당하고 있었구나.




며칠을 생각하다 우선 친한 동생한테 털어놓았다. 동생이 질색을 하며 "그 아저씨 미쳤네!" 했다.


언니 쫌! 징그러우니까 아빠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만해.


다음날로 처음 홈스테이를 소개해 준 어학원 홈스테이 코디네이터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당장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 ‘그냥 이런 일이 있었으니 참고해 주세요' 하는 정도로 가볍게 얘기하고 나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20분쯤 후에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학원 매니저 M이었다. M은 홈스테이 코디네이터한테 얘기를 전해 들었다며, 굉장히 단호한 목소리로 홈스테이를 당.장. 옮겨야겠다고 했다.


당시 M의 말을 빌리자면 이건 'Emergency' 상황이기 때문에 나를 그런 집에 하루라도 더 둘 수 없다며 내게 말했다.


"J, 지금 어디에 있든 일단 버스에서 내려. 어디에 있는지 위치만 알려주면 우리가 픽업하러 갈게. 그리고 우리랑 같이 너희 집으로 가서 오늘 당장 짐 싸서 그 집 나올 거야. 알아들었니?"


아니, 불과 몇 시간 전에 "See you afternoon, mom!" 하고 웃으며 손 흔들면서 나왔는데, 오늘 당장 짐 싸서 홈스테이를 떠나야 한다고? 나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일단 시키는 대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 사이에 학원 매니저는 홈스테이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했고, 상황 설명을 했고, 이러이러해서 J는 우리가 오늘 당장 데리고 나올 거라고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런 전화를 받은 아주머니는 충격이 크셨는지, 내가 돌아갔을 때는 그저 멍한 얼굴로 서 계셨다. 홈스테이 코디네이터의 도움으로 착착 가방을 싸는 동안, 아주머니는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저 문 밖에서 서성이셨다. 가방을 다 싸고 나서야 주춤거리며 방으로 들어오신 아주머니께서 왜 자기한테라도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울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 집에 사는 5개월 동안 특히 아주머니와 정이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 펑펑 울며 작별을 했다.


당시 차고에 (숨어) 있었던 아저씨는 얼굴도 못 본채 집에서 나왔고, 그 뒤로도 캐나다 사는 동안 우연이라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홈스테이 가족을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밴쿠버 공항에서 짐 잃고 울 뻔한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