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릴 걸 헷갈려라
나는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닌데, 예전부터 아주 간단한 것들 중 유독 자꾸 헷갈리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군대 다녀온 분들이 들으면 콧방귀도 안 나오겠지만) ‘이등병’과 ‘일등병’ 중 어떤 계급이 더 낮은 지가 늘 헷갈렸다.
그냥 외우면 되는 것들이라 당시에는 아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또 제자리였다. 무슨 이유에서든 한번 헷갈리기 시작하면 매번 확신이 없었다.
어느 날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나는 이등병이랑 일등병 중에 누가 더 낮은 지 그게 항상 헷갈려. 이걸 어떻게 외우면 좋지?"
아빠가 조금 생각하시더니, 방법을 알려 주셨다.
"너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 들어봤지?"
"알지! 집 떠나와, 열차 타고~ 그 노래잖아!"
"그럼 생각해 봐. 그 노래 제목이 왜 '일등병'의 편지가 아니고, '이등병'의 편지겠니? 이등병이 월-매나 서러우면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까지 나왔겠어? 일등병이 더 낮았으면 노래 제목이 바뀌었겠지.
그래서 이등병이 꼴찌야."
유레카!
그 뒤로 이등병과 일등병을 헷갈릴 일이 없어졌다.
근시와 원시 역시 이상하게 늘 헷갈리는 개념이었다.
"아빠, 근시가 가까운 걸 잘 보는 사람이야, 아니면 가까운 걸 잘 못 보는 사람이야?"
"근시의 한자가 뭐니? 가까울 근(近), 볼 시(視) - 그러니까 '가까운 걸 본다'는 뜻 아니겠니?"
유레카!
이걸 그냥 외울 생각만 했지, 거기에 한자를 대입해 이해해 본다는 생각은 안 해봤었는데, 아빠 말씀대로 한자를 넣어 생각해 보니 두 번 다시 헷갈리지 않았다.
영어에도 이런 식으로 영 외워지지 않는 단어가 한 개 있었다.
바로 nephew와 niece.
영어로는 남자조카(nephew)와 여자조카(niece)를 구분해서 말하는데, 별의별 방법을 다 써서 외워봐도 말할 때마다 헷갈렸다. 네퓨가 남자던가? 아닌가? 니스가 남잔가??
내 조카가 생기면 그땐 쉽게 외워지겠지 했는데, 조카가 생기고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한테 말할 때마다 헷갈렸다.
I have one...... niece? nephew? niece??
Well, it's a girl!
남편한테 아이디어를 구했다. 아빠한테 들었던 이등병의 예시를 들려주며, 비슷한 식으로 어떤 걸 연상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이 몇 개를 툭툭 던졌는데 다 너무 별로여서 퇴짜를 맞더니, 결국 고심하던 그가 마지막 답을 내놓았다.
"I got it!! 우리가 여자형제를 시스터(Sister)라고 부르잖아. 그걸 줄여서 시스(sis)라고 하기도 하고.
'시스'는 여자, 그러니까 '니스'도 여자! 어때??"
유레카!!
10년을 넘게 헤매던 단어가 머리에 쏙 박히는 순간이었다.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로 헷갈리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반복해서 외워도 자꾸 깜빡하게 되는 것들.
그럴 땐 ‘나 바보 아니야?ㅠㅠ’하며 자책하지 말고 이렇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약간의 아이디어와 사고의 전환으로 기억력이 쑥 높아지는 경험이 가능하다.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