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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Dec 14. 2022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커플템이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 얘기예요.


내 나이 30대 후반.


20대 어린 시절엔 남친과 꽁냥꽁냥 커플템을 한 두 개 맞춰 했더라도, 이제는 그런 걸 졸업할 나이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혹시 좀 늦은 신혼을 즐기고 있는 부부라면 또 모를까, 우리는 벌써 결혼 11년 차 커플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남편과 세트로 무언가를 사는 게 너무 좋다. 어쩔 땐 그저 '좋음'을 넘어서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와 함께하는 모든 걸 좋아한다.


폰은 둘 다 아이폰, 그냥 같은 폰을 쓰는 수준이 아니라 똑같은 기종을 동시에 사서 같은 폰 케이스를 입혔다.

에어팟도 같은 거 두 개를 사서 하나씩 쓰고 있다. 에어팟 케이스 역시 커플로 맞췄다.


슬리퍼도 꼭 짝으로 맞춰 사는 걸 좋아하고, 운동화랑 후드티도, 모자와 장갑도 우리가 가진 많은 커플템 중 하나다.





하루는 친구 집들이에 초대를 받아 남편과 나란히 커플 운동화를 신고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집들이가 끝나고 문 밖까지 배웅해주던 친구가 우리 신발을 보더니..."어머, 얘네 신발 봐! 너네 넘 귀엽다!"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너네 이런 거 하기엔 너무 젊은 거 아니니?


응? 순간 친구가 잘못 말했나 했다.


'젊은 거 아니냐고? 이런거 하기엔 넘 늙은 거 아니고?'


그리고 나는 그날 알았다. 캐나다엔 젊은 커플이 옷을 맞춰 입는 '커플룩 문화'가 없다는 걸. 대신 그 문화가 시니어한테 있더라. 그러고 보니 머리가 희끗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은 티셔츠나 청바지를 맞춰 입은 경우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커플룩을 입기엔 한국에선 너무 많은 나이, 캐나다에선 너무 어린 나이가 되었구나.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나의 “세트” 사랑은 단지 남편과의 커플 아이템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샴푸와 린스, 스킨과 로션도 꼭 같은 브랜드 제품을 쓰고, 양 조절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두 개를 꼭 한꺼번에 바꾼다. 숟가락, 포크, 나이프도 세트 상품, 그릇도 컵도 다 세트다.


나는 남편과 여전히 커플템을 고집하는 게 그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저 나의 “세트” 사랑에 남편이 희생되고 있었다 ㅎㅎㅎㅎ


내가 왜 이렇게 세트에 집착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언가가 짝으로 있을 때, 또는 세트로 있을 때 주는 어떤 안정감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게 미관상 '가장 예쁜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인 걸까?



이유야 어찌 됐든, 내가 좋아하는 세트 맞추기 놀이를 내가 사랑하는 그와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한 건 분명히 알겠다.


30년쯤 후엔 커플룩 입는 귀여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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