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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Nov 15. 2022

캐나다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보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어요


스포 없는 영화 이야기


밴쿠버나 토론토 같은 대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는 이곳, 빅토리아의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기생충>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영화라면 또 모를까요.


다운타운의 한 작은 영화관에서 <헤어진 결심>을 상영 중이란 얘기를 들었을 때,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무조건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입니다.


<Decision to Leave> Movie Poster


영화는 음... 제가 이해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건지,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건지, 솔직하게 말하면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칸 영화제에 초청받고 첫 상영이 끝난 후 기립박수가 이어진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까지 안겨 주었다고 합니다. 영화가 너무 좋았다는 호평과, 두번 세번 보고 싶다는 평도 많았는데, 저는 아마도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 게 다 상관없을 정도로, 이곳의 영화관에서 한국말로 나오는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참 의미 있는 주말을 보냈네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하지만 제가 진짜 하고 싶던 이야기는 영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기 영화관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화 시작 전에 여러 광고와 예고편을 틀어줍니다. 보통은 광고나 인터뷰 영상 같은 게 나오다가, 영화 시작 시간부터 메인 광고가 몇 개 나오고, 이어 예고편이 서너 개 나옵니다.

이때 틀어주는 예고편은 영화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액션 영화라면 그와 결이 비슷한 액션 영화 예고편이 나오고, 애니메이션 영화라면 (어린아이가 관객으로 있을 수도 있으니까) 또 그에 맞춰 예고편을 틉니다.


그런데 광고도 그런 식으로 고르는 걸까요? 처음으로 나온 광고가 바로 ‘코카콜라’ 광고였는데요, 30초의 짧은 광고는 놀랍게도 한국말로 시작이 됐습니다.


아래 링크를 따라 광고를 한번 보세요. 시간이 없으신 분은 처음 5초만 보시면 됩니다.


https://youtu.be/GF9y1jDCKP0


광고는 네 명의 친구가 어느 집의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왼쪽에서 한 친구가 코카콜라를 들고 턴을 하면서 다가와 식탁에 앉는데 여기서 젓가락을 든 친구가 대사를 한마디 하죠.


뭐야~ 쪽팔려어~


응? 쪽팔려? 처음엔 제가 잘못 들었나 했어요. 교양이나 시사 프로는 물론 웬만한 예능 프로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이 표현이 광고에 버젓이 쓰이다니요. 한국말 표현 중에 뜻도 좋고 발음도 예쁜 말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이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쓰는 말인데 광고에 한마디 넣는 게 아무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해서였을까요?


친구들끼리는 편하게 쓰는 말이라곤 하지만 '창피하다'는 말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비속어입니다. 한국 예능 프로에서 출연자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더라면 그러려니 했을 겁니다.


“아이참, 너 참 나를 창피하게 하는구나” 보다

“뭐야, 쪽팔리게”가 훨씬 자연스러운 표현일 테니까요.


하지만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적고 노출이 별로 안 되어 있는 외국인들이 볼 30초짜리 영상에 굳이 비속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요?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예전에 제가 어학원 다니던 시절에 저를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면 “자기 한국말 아는 거 있다”며 자랑하듯 늘어놓았던 몇몇 친구와 그들의 말이 기억났습니다.


“X나 추워”

“야, 대가리 박아”

“뭘 꼴아봐”


‘한국 친구가 알려준 한국말’이라며 늘어놓는 이런 말을 들을 때도 영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그때 생각이 문득 나네요. 다른 좋은 말을 놔두고 굳이 그런 비속어를 알려준 사람들이 저는 좀 미웠거든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외국에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죠.


대단한 애국심은 아니더라도 내 그릇된 행동이나 가벼운 언행이 어떤 이에게는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바꿀 수도 있을 만큼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저 스스로한테도 해당되는 얘기고요.



앞으로는,


캐나다 영화관에서 한국말이 나오는 광고를 보게 된다면 그냥 반갑고 뿌듯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도 아는 한국어가 있다며 말을 건네는 외국인을 보면 그저 고맙고 기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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