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쿠하세요~ 쿠쿠!
쿠쿠밥솥
내 기억 속 우리 집 부엌에는 언제나 쿠쿠밥솥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작고 기특한 기계는 언젠가부터 단순히 밥을 짓는 것 이상으로 친절하게 말도 하기 시작했다.
"취사를 시작합니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면서 밥솥만큼은 쿠쿠로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한국 브랜드 밥솥은 구하기 쉽지 않은 데다가 가격도 많이 비쌌다. 남편은 싼 브랜드의 다른 밥솥을 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쿠쿠하세요~쿠쿠!
어릴 때부터 이 CM송을 듣고 자란 나와는 달리, 한국인이 아닌 남편에게는 그 브랜드에 대한 어떤 차별성도 향수도 없었기에 두배 가까이 되는 돈을 주고 굳이 쿠쿠로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당시 우리 형편을 고려해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밥솥을 사는 데 동의했다.
우리 집 1대 밥솥: 타이거
신혼집에서 7년간을 우리와 함께 한 그 고마운 밥솥과꽤 정이 들었지만 새 집으로 이사 오면서 작별을 했다. 다시 한번 쿠쿠와 만날 기회였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여전히 망설여졌다.
밥맛이 거기서 거기지 싶어 몇 가지를 두고 고민하다 당시 할인하던 다른 제품으로 결정했다.
우리 집 2대 밥솥: 파나소닉
작고 귀여운 이 밥솥은 둘만 있는 우리 살림에 딱이었다.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백미, 현미 취사 기능이 따로 있어, 3년간 우리 집 밥 담당을 성실히 해줬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우리도 쿠쿠, 쿠쿠" 노래를 불렀는데, 남편이 그 얘기를 기억해뒀던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한인마트에 갈 때마다 쿠쿠밥솥 앞에서 티 나게 서성거렸기에 그가 모를 수가 없었다. ㅎㅎ
사실, 꼭 너무 사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밥솥 하나에 7,80만 원씩 하는 게 신기해서 쳐다본 거였다.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비쌀까 하고.
그러다 얼마 전, 전단지를 훑어보던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지금 코스트코에서 쿠쿠밥솥 세일해! 139불짜리를 40불 할인해서 99불에 팔고 있어!"
우리 집 3대 밥솥: 쿠쿠
드디어 만났다. 쿠쿠를. 아마 쿠쿠 라인 중에서 제일 저렴하게 나온 모델이지 싶은데, 그러면 어때? 쿠쿤데.
솔직히 나는 상한 음식만 아니면 준대로 잘 먹는 (전혀 다른 의미의) 절대미각 소유자라, 쿠쿠로 한 밥맛이 더 좋은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작고 귀여운 쿠쿠를 부엌 한쪽에 놓으니, 뭔가 굉장히 반갑고 또 든든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참, 이게 뭐라고, 너를 만나는 데 결혼하고도 10년이 더 걸렸구나. 쿠쿠야,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