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빈 손으로 오지 그랬어
남편이 오랜만에 꽃을 사 왔다.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스럽게 포장된, 그 자태가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꽃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꽃다발을 받아 들고 무슨 꽃인지 물어보니 chrysanthemum 이란다.
chrysanthemum?
장미, 튤립, 거바라도 아니고 국화를?
개별로 씌여진 배 포장지 같은 껍질을 살짝 벗겨내니 연보랏빛 국화가 활짝 펼쳐지는데, 정말 미안하게도 그다지 예쁘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선물 받은 거니까 예쁘게 꽂아 놔야지 싶어 꽃병에 한 송이 한 송이 꽂아보는데, 아무리 봐도 느낌이 싸한 게 별로 정이 가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잠깐만!
이 꽃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직접 사본적도 선물 받아본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바로 조문에 쓰이는 하얀 국화, 그것과 색만 조금 다를 뿐 비슷한 종류의 국화였다.
"저기…남편아? 이 꽃 있잖아. 한국에서는 조문할 때 쓰는 꽃이야!ㅋㅋ"
했더니 남편 대답이 더 웃긴다.
“중국도 똑같아”
"응?? 그럼 이거 왜 사 왔어?"
"chrysanthemum이 국화인 줄 몰랐어.ㅋㅋㅋ"
낱개로 하나하나 포장이 되어 있으니 어떤 꽃인지도 모르고 사 온 거였다. 일단 보기에는 고급져 보이니까.
찾아보니 국화도 색깔별로 꽃말이 다르고, 종류별로 생김새도 다양해서, 장례식장에서 보던 하얀 국화가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많던데, 이 사람은 왜 하필 이걸, 그것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고 사 왔을까?
그래도 어쩌겠나, 도로 물릴 수도 없고.
화병에 가지런히 꽂아 거실 한쪽에 두니 그럭저럭 볼만하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 집에 왔으니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 잘 보내고 가렴.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