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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ee Nov 20. 2023

건강에 좋다는 파, 저는 먹지 않습니다

초딩입맛 끝판왕


파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파싫모> 같은 게 있다면 제일 먼저 가입해야 할 것 같은 사람.


초딩입맛 중에서도 '최상급 초딩입맛'인 나.


하지만 그런 내 식성에 대해 내 남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만을 표한 적이 없다.


"뭘 그렇게 가려먹는 게 많냐"고 타박하지도, "식성 맞추기 까다롭다"고 불평하지도 않고, "몸에 좋은 거니까 한 번만 먹어보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한 적도 없다.



특히 나는 파를 싫어해서, 파전이나 파채 같은 요리는 물론 음식에 맛을 더하거나 색을 입히고자 요리 위에 파를 살짝 올린 것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먼저 나서서 "파는 빼 주세요"라는 추가 주문을 잊지 않는다.


그러다 혹시 그 요청사항을 깜빡하고 말하지 않거나, 서버나 요리사의 실수로 파가 들어간 날이면, 잽싸게 내 접시에서 파를 골라내 준다.




지난 주말 집 근처 단골집,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내가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사이, 내 앞으로 서빙된 미소된장국을 조용히 가져가 그 안에 있는 파를 하나하나 골라내던 그.


너무나 익숙한 그 손길이 유독 따뜻하게 보여 잽싸게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 따뜻한 마음을 사진으로라도 담고 싶어서.


점점 파가 가득해지는 그의 미소된장국


이 별일도 아닌 일이, 그와 살면서 수도 없이 있었던 이런 소소한 일상이, 사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문득 깨닫게 되어 순간 울컥하고 뭉클함이 솟은 날이었다.




성인 남녀가 만난다는 건,


서로를 만나기 전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습관과 취향과 스타일이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는 뜻일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기준에서 내 방식을 판단하거나 무모하게 바꿔보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았고, 조금은 다르거나 부족하거나 혹은 까다로운 모습까지도 모두 나의 일부분으로 인정해 줬다.


하늘이 참 예뻤던 어느 날


파가 건강에 좋다며?


내 파까지 너 다 줄게.

파 많이 먹고 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줘.




사진 출처: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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