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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May 02. 2021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용기를 내 넌 할 수 있어

Q.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게 가능한가?

2019년까지 내 마음 한 구석에 얼쩡거리던 화두는 위로였다.

그때의 잠정적 답은 A. 아니, 아닐걸, 아니던데, 였다.


'~해 주다.' 

이 서술어가 붙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말들이 있는데, <용서>랑 <위로>다.


어딜 감히? 누가 누굴?

해 준다는 의지를 보이는 순간, 이상하게 의미가 오염되는 느낌이다.


"용서해줘." 하면 용서해주기 싫고

"위로해줄게." 하면 위로가 하~나도 안 된다. 위선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나도 아니면서, 나만큼 내 맘도 모르면서...(근데 나도 모름) 괜히 마음이 삐뚜름해진다.


그냥 용서도 위로도 ‘받는’ 거 같다. 어느 순간 저절로.

주는 사람은 준 줄도 모르게.




최종 합격했던 회사를 포기한 적이 있다. 그 회사 직장인 말고 방송국 PD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갔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만 가지고.

카페 알바를 하면서 매주 스터디를 하고 작문을 썼다. 영상을 찍고 인터뷰도 하러 다녔었다. 매일 바쁘게 뭔가 하고 있긴 한데, 멈춰있는 거 같았다. 시간도 돈도 부족했다. 어쩌다 약속이 생기면, 과연 커피 값을 낼 수 있을지 백 원 단위로 잔액을 확인해야 했고 그런 날엔 내 선택이 틀린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노래방 같다.'

광고에서 영상이 광고 카피(내레이션, 자막)를 그대로 따라만 갈 때, 노래방 같다고 한다. 그림이 1차원적이라 보기에 와닿지는 않더라는 뜻이다. 성의와 노력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재밌는 표현이다. 성실하게 달려갈 뿐인 건데.

코인 노래방에 갔다. 방송국 공채시험에서 떨어지고 넋 놓은 지 며칠 지난날이었다. 천 원짜리를 여러 장 밀어 넣고 막 부르다가, 마지막 두 곡이 남았을 때 원피스 주제곡이었던 코요테의 <우리의 꿈>을 눌렀다.


https://m.youtube.com/watch?v=QbI_N4M5GFc

원피스 OST - 코요테 <우리의 꿈>


경쾌한 일렉기타 전주가 나오고 익숙한 애니메이션 장면들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뱃머리에 짝다리 짚고 서서 밀짚모자를 만지는 루피, 얼굴로 튀어 오르는 파도 물살. 딸려 올라온 거다. 걱정 없이 만화를 보던, 


내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믿지 못할 한 마디
이 세상을 다 준다는 매혹적인 얘기
내게 꿈을 심어주었어
 
말도 안 돼 고갤 저어도
내 안에 나 나를 보고 속삭여


눈이 먼저 다음 가사를 읽었고, 마음이 이상해졌다.

색칠되는 가사를 쫓아 부르는데, 마이크를 타고 들리는 내 목소리는,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용기를 내 넌 할 수 있어.

위로받아 버렸다. 500원에 두 곡이던 노래방 기계한테.

위로는 받는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끌어당기는 걸까.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잖아
함께 도전하는 거야
너와 나 두 손을 잡고
우리들 모두의 꿈을 모아서

거센 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시련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꿈도 못 꿀 정도로, 슬퍼지려 하다가 남은 한 곡도 우리의 꿈을 눌렀다.

완창 하며 다짐했다. 그냥 계속 꿈꾸면서 살자. 밝은 내일이야 있든 말든.

그리고 누구를 위로해줄 생각은 하지 말자자. 그냥 하자. 그냥 진심으로만.


이 곡을 다시 듣는 요즘 웃음이 난다. 여기까지 고독하게 혼자 온척하다니! 아이고 오만도 하여라 낄낄. 

나를 위로해주던 서툰 몸짓들 귀한 마음들이 떠오른다. 실은 매일 위로받으며 살고 있구나.


뻔뻔한 질문 #10. 위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었나요? 어떤 말이 듣고 싶었나요?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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