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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Dec 21. 2021

택시 톡 #1

아저씨 저 아직 안 내렸는데요.

택시기사님도 MBTI처럼 16 유형 정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한 유형은 손님이 타고 있든지 말든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 유형이다.


운전 중에 통화는 위험하다. 내 돈 내고 탄 택시에서 불필요한 소음은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 가만히 들어보시라. 가끔은 라디오 사연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금요일 퇴근길에 지친 몸으로 탄 택시

기사 아저씨는 갑자기 끼어든 앞차에 경적을 빵빵 빵빵 네 번, 쌍라이트를 여섯 번이나 깜빡이며 복수했다.

집에 안전하게만 보내주세요. 생각하던 찰나 기사님 핸드폰에 이름 세 글자가 뜬다. 설마 받으시게요?



[박XX]

여자 이름, 어리고 다정한 목소리. 딸인가 보다.

"내일은 집에 오는 거지? 기차는 예매했어?" 기사님의 물음에

딸은 핸드폰 요금제를 알뜰하게 바꿨다며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통화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아빠에게 전화했는데. 아빠랑 친한가 보다.


[박OO]

이번엔 남자 이름, 지친 목소리. 아들인가 보다.

"일 같지도 않은 거 하면서 고생할 거면, 그냥 일을 나가지를 말어." 기사님의 걱정 반 나무람 반.

수화기 너머에 아들은 고분고분 지친 숨소리만 들려준다.

기술이라도 배우라며 폴리텍 대학을 등록해주겠다고 언성을 높이던 기사님은

통장으로 10만 원을 부쳤으니 확인하라며 조금 수그러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박XX]

이번엔 기사님이 걸었다. 아저씨 저 아직 안 내렸는데요.. 내가 타고 있는 건 개의치 않고 다시 딸에게 말을 건다.

"내일 오빠 잘 데리고 와. 같이 밥이나 먹게."


내릴 곳이 다 와가자 아저씨는 뒷좌석에 탄 나에게 사적인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어 뭐지? 싶은 질문도 있었지만, 아저씨네 가족을 두 명이나 만나서인지 막 밉지는 않았다.

아저씨네 딸은 대학을 나와서 5년 동안 회사를 다녔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와 5년이 나요? 그건 진짜 대단한 건데요. 저는 이제 겨우 2년 일했거든요. 오늘은 좀 피곤한 날이었네요. 그래서 택시 탔어요. 아저씨, 길 건너자마자 횡단보도에서 내려주세요. 안전 운전하시고요. 탁- 택시 문을 닫자마자 카카오톡 알람이 뜬다. 운행을 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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