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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Feb 09. 2022

택시 톡 #4

라디오가 말을 걸 때

아침 출근 택시에서 울었다.

바쁜 거 빼고 다 좋은 팀이지만,

이건 바빠도 너무 바쁘다. 몸에 나쁘다. 아프다.

퇴근하면 일이 따라오고 출근 전부터 일이 코앞까지 마중 나온다.



지난 토요일엔 일요일 회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왜인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 그냥 많이 먹고 많이 잤다.

일요일 점심엔 출근 택시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남대교를 지나면서 먼강. 혼자 미생 한 편 찍었다. 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릴 때가 되니 기사님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랬다.

“좋은 하루 되세요..”

 조금 시끄러운 손님이었을까. 카드로 결제했지만 거스름돈을 받은 기분이었다.


(어제) 월요일 회의에선 게으름 피웠던 게 들통났고

(오늘) 화요일 회의에선 그래도 해냈다.

지나가는 칭찬과 작은 성취들을 꼭 붙잡고 다시 웃는다. 오… 나 바본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 택시를 탔다.

무슨 생각을 했더라. 집에 거의 3분의 2쯤 다 와서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들렸다.

귀여운 어쿠스틱 기타와 플루트 소리.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검색했다.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새로운 풍경에 가슴이 뛰고

별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나는 걸어가네 휘파람 불며

때로는 넘어져도

내 길을 걸어가네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내가 자라고 정든 이 거리를

난 가끔 그리워하겠지만

이렇게 나는 떠나네

더 넓은 세상으로


그리고 이어진 다음 곡

어 뭐지 날 위한 선곡인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출발, 언젠가는.


다음 곡이 궁금했지만 마지막 신호등 신호가 바뀌었다.

직진. 초록불.

기사님 횡단보도 앞에서 내려주세요.

택시에서 하차하자 어플이 축하 알람을 보냈다.


이동의 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배터리 충전 잊지 말자




P.S.

궁금해서 이 시간대 라디오 편성을 뒤져서 선곡표를 찾아냈다(뿌듯). 자세히 보니 22:05 음악은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Pink martini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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