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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Jan 24. 2022

Why? No why

18.06.22-6.23

중국 창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


김포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국제선을 한 번 타고

중국 창사에서 프랑크푸르트 가는 국제선을 타기 위해 중국 국내선 환승을 하고 있었다.

한국이 시원한 편이었구나. 갑자기 여름의 한 복판에 내던져지자 온 몸이 끈덕지고 땀이 배어 나왔다.

벌써 집에서 나온 지 12시간이 지났다. 중국어만 오가는 중국 국내선을 환승하려니 긴장한 탓에 더 더웠다.


베이징에서 창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친구와 나는, 앞 좌석 주머니에 있던 중국어로 된 잡지를 꺼내서 게임을 했다. 무작위로 펼친 페이지에 사람 수가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

몇 페이지 차이로 사람이 전혀 없기도 잔뜩 있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페이지를 어림잡아 보는 몇 초 동안 수많은 가능성이 왔다 갔다 있다 없다 하는 나름 소소한 스릴 게임.


창사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자정이었다. 목이 너무 말랐다. 문 연 곳은 KFC 단 한 곳뿐이었다. 콜라 한 잔이랑 아이스 라떼를 주문해서 콜라를 먼저 받으려는데, 중국 국내선이라 그런지 외국인도 예외 없이 페이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자기 몫의 시원한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이 간절했던 친구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그때 우리 뒤에 서있던 중국인 여자 둘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뭐 먹고 싶어요? 내줄게요.”


당황스러웠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남의 땅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이  모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  내용이 흔쾌히 베푸는 호의라는 것도. 왜요? 왜죠? 와이? 땀을 삐질 흘리며 손사래를 치자, 그들은  와이!  와이! 라며 중국어 같은 영어로 답하며 점원에게 결제 수단을 건넸다.


"우리 중국 돈 없잖아, 유로라도 드리면 되려나?"

"아 근데 여기 국내선이라 유로 쓸모없을 거 같은데" 친구의 맞는 말에 우리는 중국 돈이 없다고 말하자, 그들은 괜찮다며 얼음컵에 라떼가 담기길 기다리는 동안 치즈맛 웨하스도 건넸다. 짭짤한 이국 과자의 맛. 너무 고마워서 미안했다. 뭐라도 갚을 게 없을까? 배낭을 뒤져 지갑을 찾았고 환전해둔 유로화 지폐를 꺼내 들었다.

"언니, 우리 이거 그냥 받아도 될 거 같은데." 겸연쩍어 못 견뎌하는 나를 친구는 넌지시 말렸다. 그럼에도 나는 콜라와 아이스 라떼를 합친 금액보다 큰 유로 지폐를 건넸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로를 받아 든 그들의 얼굴은 아리송했다. 환승 비행기는 2시간 정도 남았고 그들은 한동안 머물다 사라졌다.


콜라를 다 마셔갈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받을 걸 그랬나? 나는 왜 호의를 호의로 받지 못했을까.

그들의 친절에 대한 적절한 답례는 어쩌면 한국어로 나누는 상냥한 대화 몇 마디였을지 모른다.


공항 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받은 호의는 꼭 돌려줘야 한다는 강박은 베푼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는 것만이 여유 있는 게 아니라, 잘 받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구나. 호의가 둘리가 되는 것도, 주고도 찝찝한 것도 진심이 진심으로 배달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문제다.

그렇다고 내가 잘 주는 사람이냐 하면 그건 또 갸우뚱이다. 가끔은 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서 우당탕 너무 큰 마음을 포장지 없이 건넬 때도 있으니까.


친구는 반밖에 안 마신 아이스 라떼를 웃긴 표정으로 들어보이며, 라떼는 역시 한국이 짱이라고 넉살을 떨었다. 그 표정을 보니, 나는 조금 더 잘 주고 잘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메모장을 뒤지다가 4년 전에 여행 중 적어둔 메모가 있어 글로 완성했다.

선물을 선물처럼 주고 받는 연습은 아직도 진행 중.

가끔은 선물같지 않은 것도 선물처럼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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