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22-6.23
중국 창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
김포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국제선을 한 번 타고
중국 창사에서 프랑크푸르트 가는 국제선을 타기 위해 중국 국내선 환승을 하고 있었다.
한국이 시원한 편이었구나. 갑자기 여름의 한 복판에 내던져지자 온 몸이 끈덕지고 땀이 배어 나왔다.
벌써 집에서 나온 지 12시간이 지났다. 중국어만 오가는 중국 국내선을 환승하려니 긴장한 탓에 더 더웠다.
베이징에서 창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친구와 나는, 앞 좌석 주머니에 있던 중국어로 된 잡지를 꺼내서 게임을 했다. 무작위로 펼친 페이지에 사람 수가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
몇 페이지 차이로 사람이 전혀 없기도 잔뜩 있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페이지를 어림잡아 보는 몇 초 동안 수많은 가능성이 왔다 갔다 있다 없다 하는 나름 소소한 스릴 게임.
창사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자정이었다. 목이 너무 말랐다. 문 연 곳은 KFC 단 한 곳뿐이었다. 콜라 한 잔이랑 아이스 라떼를 주문해서 콜라를 먼저 받으려는데, 중국 국내선이라 그런지 외국인도 예외 없이 페이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자기 몫의 시원한 아이스 라떼 한 모금이 간절했던 친구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그때 우리 뒤에 서있던 중국인 여자 둘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뭐 먹고 싶어요? 내줄게요.”
당황스러웠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남의 땅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이 내 모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게. 그 내용이 흔쾌히 베푸는 호의라는 것도. 왜요? 왜죠? 와이? 땀을 삐질 흘리며 손사래를 치자, 그들은 노 와이! 노 와이! 라며 중국어 같은 영어로 답하며 점원에게 결제 수단을 건넸다.
"우리 중국 돈 없잖아, 유로라도 드리면 되려나?"
"아 근데 여기 국내선이라 유로 쓸모없을 거 같은데" 친구의 맞는 말에 우리는 중국 돈이 없다고 말하자, 그들은 괜찮다며 얼음컵에 라떼가 담기길 기다리는 동안 치즈맛 웨하스도 건넸다. 짭짤한 이국 과자의 맛. 너무 고마워서 미안했다. 뭐라도 갚을 게 없을까? 배낭을 뒤져 지갑을 찾았고 환전해둔 유로화 지폐를 꺼내 들었다.
"언니, 우리 이거 그냥 받아도 될 거 같은데." 겸연쩍어 못 견뎌하는 나를 친구는 넌지시 말렸다. 그럼에도 나는 콜라와 아이스 라떼를 합친 금액보다 큰 유로 지폐를 건넸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유로를 받아 든 그들의 얼굴은 아리송했다. 환승 비행기는 2시간 정도 남았고 그들은 한동안 머물다 사라졌다.
콜라를 다 마셔갈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받을 걸 그랬나? 나는 왜 호의를 호의로 받지 못했을까.
그들의 친절에 대한 적절한 답례는 어쩌면 한국어로 나누는 상냥한 대화 몇 마디였을지 모른다.
공항 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받은 호의는 꼭 돌려줘야 한다는 강박은 베푼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주는 것만이 여유 있는 게 아니라, 잘 받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하는구나. 호의가 둘리가 되는 것도, 주고도 찝찝한 것도 진심이 진심으로 배달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문제다.
그렇다고 내가 잘 주는 사람이냐 하면 그건 또 갸우뚱이다. 가끔은 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서 우당탕 너무 큰 마음을 포장지 없이 건넬 때도 있으니까.
친구는 반밖에 안 마신 아이스 라떼를 웃긴 표정으로 들어보이며, 라떼는 역시 한국이 짱이라고 넉살을 떨었다. 그 표정을 보니, 나는 조금 더 잘 주고 잘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메모장을 뒤지다가 4년 전에 여행 중 적어둔 메모가 있어 글로 완성했다.
선물을 선물처럼 주고 받는 연습은 아직도 진행 중.
가끔은 선물같지 않은 것도 선물처럼 느끼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