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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 Jul 27. 2022

사주택시

택시기사지만 명리학자입니다

Q. 누구 택시 탔는데 기사님이 사주 봐준 적 있는 사람?
A. 있다고요? 그럼 아마 나랑 같은 택시를 탔을지도요.



나는 기독교 모태신앙이다. 가족 중에 목사님도 있다.

근데 교회 안 간지는 10년 됐다.(나름 이유 있음)

그래도 매일 아침에 샤워하면서 기도한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신에게 말을 거는 습관이 있다.(속으로 혼잣말)


하지만 초3 때부터 별자리 만화를 섭렵했고,

MBTI가 유행하기 10년 전부터 MBTI 검사를 했으며,

곁눈질로 사주팔자와 자미두수를 찾아봤다.(나를 축복하는 얘기만 발췌해서 기억하는 편)

그냥 내 얘기라면 관심이 많았다. 나는 나를 알고 싶다.


그래도 모태신앙의 마지막 양심(신앙심인가 자존심인가)으로

내 돈 주고 내 발로 내 운명을 남에게 물으러 간 적은 없었는데

새벽 출근 택시에서 갑자기, 저기요? 잠깐만요? 하는 사이

기사님이 내 사주를 봐줬다.




그날은 이상하게 그 택시를 기다리고 싶었다.

보통 택시 어플에서 8분이 넘는 거리에서 오는 택시가 잡히면 콜을 취소했다.

새벽 6시 14분 바깥은 아직 깜깜. 배차된 기사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모 회사 홈페이지 대표 인사말에서 볼법한 느낌이었다. 깔끔하게 넘긴 회색빛 머리칼과 무태 안경 때문인가.

나는 몹시 피곤하고 새벽부터 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이 택시라면 조용히 갈 수 있겠어. 택시를 기다렸다.


신호등을 세 개쯤 지났을까. 기사님이 마른기침으로 말을 텄다.


"손님 죄송합니다. 잠시 물 좀 마시겠습니다."

기사님이 양해를 구하더니 운전석 창문을 착- 열고, 운전석 근처에 둔 보조 가방에서 보온병을 착- 꺼내 달칵 열어서 물을 마시곤 착- 정리해서 다시 가방에 넣고 창문을 착- 닫았다. 정돈된 움직임에 괜히 답하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사실 저는 (코로나)한 번 걸렸다 나았거든요. 하하!"


그렇게 코로나와 백신 얘기를 하다가, 기사님이 요즘은 얼큰하게 취한 친구 녀석들이 술 한잔 하자며 연락 오는 횟수도 늘었다는 얘기를 했고, 금주 이후 그런 자리에 일절 나가지 않는다기에, 어쩌다 금주를 하게 되셨냐고 물으니, 회사에 다닐 적에는 늘 마지막 뒷정리를 할 정도로 정신력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한 번은 술자리에서 임원이 후배 직원을 사이에 두고 모욕을 줬고 이에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는데, 그래도 본인이 수양을 하고 부처와 불법을 공부한다면서 그 자리에서 그 말을 참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금주를 결심했다는 얘기였다.


불법이라니 혹시 도를 아십니까는 아니겠지. 알고 보니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는 기사님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목동에 명리학 상담원도 운영 중이었다. 사이트 메인에는 택시 어플에서 본 그 사진이 걸려있었다.



"가끔 손님 중에 힘들어 보이는 분이 계시면 상담을 해드리기도 합니다."

"오 달리는 사주 택시네요. 그럼 복채도 받으시나요?"

"무료로요. 요즘 많이 힘들잖아요. 특히 젊은 분들"

그래도 부자한테는 꼭 돈 받는다며 껄껄 웃으셨다.


한남대교 달릴 때쯤, 나는 제 발로 사주 보러 간 적이 없다고 슬쩍 털어놨다.

그러다 슬쩍 띠를 묻기에 생년월일을 말하게 됐고

카메라와 관련된 일을 하실 것 같다기에, 어 맞아요 저 광고일 해요. 냉큼 일시도 말해버렸다.


몇 가지 맞는 말과 틀린 말이 오갔지만, 재밌었다. 이 새벽에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과의 대화가.

그래서일까 동료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도 슬쩍 털어놨다. 이래서 사람들이 사주를 보는구나.

유턴만 하면 회사인데. 아쉽다. 나 사주 좋아했네.

기사님도 같은 맘이 셨는지 회사 앞에 다 와가는데 엑셀에서 발을 슬쩍 들어 속도를 늦추더니 그런다.


"사람들 생각에 침을 놓는 일을 하실 거예요. 지금처럼 계속해보세요."


그 말을 붙잡고 내렸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출근길이 한결 상쾌했고요.

그날 회의에는 괜찮은 아이디어 들고 갈 수 있었어요.


#어차피 #일어날일은_일어나고

#그래도 #내운명은_내가만든다





뻔뻔한 질문#7. 팔자는 취사선택
내 사주에 가장 크게 들어있었으면 하는 특징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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