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리 Oct 24. 2020

이름의 느낌

내 이름이 너무 흔해서 미워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이름 속에는 그 이름을 지닌 존재의 성품이 살고 있다.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사느냐에 그 이름의 느낌이 생기는 게다.
사람들이 네 이름을 부를 때면 은혜의 마음이 일어나도록 아름답게 살라.
- 신경숙 『리진』


소개팅을 할 때면 헤어지기 전에 상대방에게 이름의 뜻과 의미를 물어보곤 한다. 자기 이름의 한자와 의미를 풀어주는 상대방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담긴 주변의 염원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을지가 예고편(내 맘대로)처럼 재생된다. 나는 이름대로 산다는 말을 믿는다.


내 이름이 너무 흔해서 미워하던 때가 있었다. 한 학년에 동명이인이 4명쯤 되는 튀지도 멋지지도 않은 이름이 나를 평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메일 아이디를 만들거나 게임 닉네임을 지을 때 심사숙고해서 의미 부여를 한다. 아직도. 아마 이때부터 '컨셉'을 잡아내는 것에 흥미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환경조사라고 해서 본관과 한자 이름을 알아가는 숙제가 있었다. 그때 내 이름을 지어준 사람과 이름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자신의 염원과 신앙을 담아 이름 한 자 한 자를 옥편을 넘기며 골라내었다고 한다.



은혜 은, 곧을 정

잘 쓰는 한자와 잘 쓰지 않는 한자 한 글자씩을 뽑아 내 이름으로 문장을 쓰셨다. 

'신의 곧은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되어라.'


이은 정

이름의 의미뿐만 아니라 성이랑 붙여 불렀을 때 부드럽게 발음되고 닫히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너는 엄마와 아빠의 정을 이어준 아이잖니, 덧붙이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붙여줄 자격이 생긴 순간 얼만큼 설레고 또 두려웠을까. 내 이름에 담긴 엄마의 한 시절을 듣고 나서 나는 내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음 타자인 동생의 이름은 나와 끝 글자 라임을 맞춘 병렬적인 의미로, 자식 이름 짓기 시리즈를 마무리하셨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집에 첫 전화를 들일 때도 전화번호가 들리는 발음으로 슬로건을 만드셨다.  


0297 

영(혼)이 구원받고 치료되는 집

삐삐를 경험한 세대의 짬에서 나온 바이브일까. 독실한 크리스천은 집 전화를 걸 때도 기도를 한다. 생활 밀착형 카피라이터 밑에서 자란 셈이다. 


은정아, 이은정. 

엄마가 부르던 내 이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감정이 기억난다. 아침에 깨울 때, 재미난 것을 발견했을 때, 심부름시킬 때, 사랑한다고 해줄 때, 혼낼 때는 꼭 성을 붙여서 불렀었지. 언젠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문득 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너무 어색했다. 어쩌면 내 이름과 가장 친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남들은 내 이름을 부를 때 어떤 느낌일까. 요즘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이름은 누구인가.



뻔뻔한 질문 #8. 이름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러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자주 생각하는 이름은 누구인가요?


이전 07화 사주택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