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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Mar 30. 2019

반려동물과 사람2 세 번째 안락사 권유를 거절한 푸들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으면 저도 한 자리 꼭 차지하고 앉는 녀석이었다. 

잠시 저를 잊고 우리끼리만 밥을 먹으면 곁에 와서 앞발로 무릎께를 툭툭 치며 뭐 잊은 거 없냐는 듯 섭섭하다는 표정을 짓던 녀석, 야단이라도 맞는 날엔 어김없이 눈물 한 방울을 대롱대롱 매달고는 반성하고 있으니 알아 달라는 표정이 역력하던 녀석, 가족 중 누구하나라도 귀가 하지 않으면 현관 앞에서 내내 엎드려 기다리다 마지막 가족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 일을 마쳤다는 듯 잠자리에 들던 녀석, 혹여 내가 울기라도 하는 날이면 저도 슬픈 양 가만히 바라보다 내 무릎에 올라서서는 제 얼굴을 부비며 눈물을 핥아주던 녀석, 사람만큼이나 갖가지 표정을 지어 우리가족을 늘 웃게 만들던 어여쁜 너를 어찌 잊을까…….      


자고 일어나니 밤새 토해놓은 흔적이 집안 곳곳에 가득 하다. 늙고 병들어 듣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힘에 부쳐하는 녀석에게 이젠 먹는 것조차 고통이 되어버린 듯해 안쓰러움이 복받친다. 한쪽 구석에 축 늘어져 몸도 가누지 못하는 녀석을 품에 안고 나는 또 눈물바람을 한다. 이제 더는 우리 욕심으로만 녀석을 붙잡을 수가 없는 듯하다. 자고 있던 작은 딸아이를 깨워 녀석과 작별인사를 하라고 말하며 우리 가족 모두는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울어야 했다. 


녀석의 고통이 마음아파 울었고, 사료만 먹여야함을 알면서도 주는 재미를 놓지 못해 사람처럼 먹인 것을 자책하며 울었다. 게다가 이렇게 아플 때 하필이면 산골짜기로 이사해 녀석의 잠자리를 추운 곳으로 내 몬 것이 못내 미안해서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의 차에 시동을 켜고 녀석을 태우니 녀석도 알겠던지 힘겹게 눈을 뜨고는 오래도록 슬픈 눈맞춤을 해 준다.      


그렇게 녀석을 태운 남편의 차가 떠나고 나는 녀석의 방석을 끌어안고 계속 울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쯤 지났을까. 녀석을 태운 남편의 차가 다시 돌아왔다. 죽었으리라 생각한 녀석을 다시 품에 안고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볼을 부비고 입맞춤을 하고 다시 살아와줘서 고맙다고 얼마나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던지…. 큰 효과야 없겠지만, 주사 맞히고 며칠 분의 약을 받아왔으니 그때까지라도 못다 준 사랑 다 주고 보내자고 말하는 남편의 눈시울도 붉다. 녀석을 잃는다는 슬픔은, 벌써 세 번째의 안락사를 권유하는 수의사를 번번이 거절하고 나오는 남편에게도 고통이 아닐 수 없을 터였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보내기로 했다. 포대기로 업고 일하기도 하고 보양식도 해 먹이며 녀석을 중심으로 한 생활이 되어갔다. 귀가 멀어 다가가 만져야만 반응하는 녀석이기에 일할 때마다 녀석의 자리를 옮겨 최대한 가까이 두고 눈으로 살폈다. 걷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힘들어하는 녀석을 위해 해바라기하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주고 녀석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들을 늘 근처에 두었다. 그 사이 가구 공장을 하는 남편의 친구에게 부탁해 관도 준비했다. 

그 윤기 나고 보드랍고 많던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뻣뻣해져 말끔하게 미용을 시키고 보니 잘 먹지 못하던 몸이 너무 앙상하다.      

목도리와 세트로 된 옷을 사 입히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녀석을 자리 째 들어 다시 해바라기하기 좋은 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그런데 녀석이 사라졌다. 족발 뼈다귀를 주고 돌아선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걷는 것조차 힘에 부쳐 웅크리고 있는 것이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녀석이 어떻게,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가게 안은 물론이고 혹시나 싶어 잘 나가지 않는 가게 옆 텃밭 쪽도 샅샅이 살폈지만 없다. 커다란 바위 두 개를 힘주어 올라야만 갈 수 있는 뒷산으로 가는 가파른 그곳에도 없고, 십 여미터 아래 도로 주변 그 어디에도 없다. 인적이 드물어 붙잡고 물어볼 누구도 없으니 목이 터지라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근처를 해매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어 암담할 뿐이었다. 밤이면 야생동물도 내려온다는데 가뜩이나 겁 많은 녀석이 어찌 밤을 보내는지,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우린 아직 널 보낼 준비가 덜 되었는데….      

병원에서 되돌아온 녀석과 한 달을 더 함께 하고, 그렇게 녀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넉 달이 지났다. 13년을 함께 산 녀석의 실종은 우리 가슴에 멍울이 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주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은’이라고 녀석도 그리 생각한 것일까? 어쩌면 그때 보냈어야 옳았던 건 아닐까? 해답 없는 물음만 가득한 채 본격적인 겨울이 속절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후 남편이 매일이다시피 오르는 뒷산은 등산의 목적이 아닌 녀석 찾기가 되어갔다. 그 넓은 산을 헤집는다고 어찌 녀석을 찾을 수 있을까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편치 않은 날의 연속이니 ‘운동 삼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남편의 속내를 어찌 모를까. 


산에 다녀오겠다며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선 남편이 채 몇 분이 안 되어 다시 돌아왔다. 낯빛이 굳어있어 무슨 일이냐 물으니 녀석이 저기 있단다. 저기라니, 침실로 쓰고 있는 2층 방 창문에서 보면 불과 5미터 남짓한 거리요. 하루가 멀다 하고 산으로 오르는 남편이 수시로 지나는 길목이 아니던가.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이 가파른 곳을 올라왔으며, 또 그렇게 오르내리며 찾아도 없던 녀석이 이렇게 불과 5미터 남짓한 오솔길 한복판에서 꽁꽁 얼어있단 말인가. 입혀준 옷은 어데 가고 세트인 목도리만 남아 녀석의 체온을 지켰는가. 머리가 집 쪽으로 향한걸 보니 녀석이 집에 오려고 얼마나 버둥거렸을지 눈에 선하여 ‘아이고, 이놈아….’ 통곡이 절로 나왔다.      

 내 목도리를 풀어 관 아래에 깔고 너의 몸이 바스라지지 않게 조심히 들어 그 위에 눕힌다. 앙상하게 마른 채 얼어버린 머리며, 몸 앞발 뒷발을 쓸어주고 너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제일 명랑한 녀석으로 주세요.”란 내 주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덜렁 너를 들어 내 품에 안겨준 수의사의 말처럼 너는 참 밝고 활달한 녀석이었어.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너를 내가 제일 먼저 받아 안았기에 나를 가장 따르고 믿었었지. 생각해보면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내게로 와서 아주 오랜 시간 위로가 되고 웃음이 되어주었어.      

“고맙다 주주야. 잘 가 주주야. 사랑해 주주야.” 

볕 잘 드는 커다란 나무 아래 너를 묻으며, 그래도 너를 찾아 이렇게 내 손으로 묻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이 엄마 아주 씩씩하게 너와 작별을 했지.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도 너는 내 책상위에서, 또 휴대폰 속에서 그때의 앙증맞은 모습 그대로 여전히 나를 미소짓게 하는데 어찌 너를 잊으리. 내 어찌 너를 잊으리. 이 엄마는 여전히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구나! (남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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