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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Mar 28. 2019

반려동물과 사람1 포메라니안의 죽음

아내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눈을 뜨고 숨을 쉬던 애완견 ‘포미’녀석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있었다. 게다가 눈을 감지 못한 채였다. 

손으로 눈을 감겨주며 천국에서는 영생을 누리라고 조용히 일렀다. 어제 입원실을 찾았을 때 녀석은 퀭한 눈으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말할 듯이 멈칫거렸었다. 하늘이 노랗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으며 세상은 깜깜 암흑천지 같았다. 이 정도로 아픔이 크고 참담한 마음일 줄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족 하나와 영원한 별리를 겪는 고통이나 슬픔과 다를 바 없었다.      


작은아이가 대학 신입생 무렵이었지 싶다. 아이가 아무 고민 없이 덥석 구입한 아기 강아지 한 마리가 막무가내로 우리 집으로 밀고 들어와 겉돌며 가장인 내 눈치를 살피던 나날이었다. 처음엔 다시 돌려보내라며 매정하게 대했어도 묘수가 없었다. 길러 줄 적임자가 나타나면 조건 없이 보내주라는 단호한 명령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어긋한 만남과 애증이 가시지 않은 채, 소 닭 보는 듯한 사이인데 들어온 사나흘 만에 심하게 아파 일단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기나 다름없는 어린 생명이 경각을 다툰다면서 당장 입원 치료하라는 것이다. 옴치고 뛸 재간이 없어 다소곳이 따랐는데 나중에 거금의 병원비를 보다 기절할 뻔하였다. 녀석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 벌이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만남도 전생에 지은 업이려니 마음을 고쳐먹고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포메라니안(pomeranian)’ 이라는 품종으로 이름을 ‘포미’라고 지었다. 처음엔 자질구레한 충돌과 갈등으로 맘고생도 많았다. 뒤죽박죽 와중에 실제 주인인 작은아이가 슬쩍 꽁무니를 빼면서 수수방관하기 시작했다. 그런 까닭에 녀석의 보살핌은 자연스럽게 나와 아내의 몫이 되었다. 밀고 당기면서 시나브로 녀석에게 엎어져 알콩달콩 7년인가 지날 무렵 느닷없이 노환이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끙끙 앓기를 달포 정도 지속하여 어쩔 수 없이 입원시켰는데 보람도 없이 쓸쓸한 병원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녀석을 잃는 아픔을 겪은 이후 다시는 애완동물(a pet) 아니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을 키울 자신이 없다. 그런 까닭에 지난날 ‘포미’를 집에 데리고 왔던 작은아이의 아들인 손주가 반려동물 타령을 해도 단호히 내치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반대가 완강해지자 손주가 여섯 살 때인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죽으면 강아지를 사다가 키우겠다.’고 했었다. 그 손주가 아홉 살인 지금도 똑같은 소원을 툭하면 들먹인다. 하지만 나는 요지부동이다. 지난날 된통 겪었던 아픈 트라우마(trauma) 때문이다. 

아직도 ‘포미’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아파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기왕에 먼 길을 가야 할 운명이라면 무섭고 쓸쓸한 입원실에서 데리고 와서 품에 포근하게 안아주며 보낼 걸 하는 후회와 회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맥락에서 또 다시 슬픈 인연이 되풀이 될 개연성 때문에 아예 반려동물 언저리에도 어정거리지 않을 참이다.      

우리말에서 애완동물은 ‘사랑스러워 구경하고 싶은 동물’, 영어에서는 ‘옆에 두고 만지면서 귀여워 할 수 있는 동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사회가 발달을 거듭 할수록 물질은 풍요로워지는데 비해 인간은 점점 자기중심적이고 정신은 삭막해진다는 진단이다. 그렇지만 동물의 세계는 예와 다름없이 천성 그대로 순수하다는 견해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과 교감을 통해 인간 본연의 성정을 되찾으려는 것이 동물을 애완하는 일인데, 그 대상이 되는 동물을 ‘애완동물’이라고 정의한다.      


한편,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the human-pet relationship)를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그 모임은 동물 행동학 창시자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K. 로런츠(Konrad z. Lorenz : 1903-1989) 80세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가 주관했었다. 여기서 개 ·고양이·새 따위의 애완동물 가치성을 재인식하여 반려동물로 부르도록 제안하면서 승마용 말도 여기에 포함하도록 하였다. 이 같은 일련의 합의 도출은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을 존중하여 애완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로 개칭했던 성숙한 가치관의 반영이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고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첫째로 홀로 사는 독거자인 ‘독(獨)’, 둘째로 부모가 없는 고아인 ‘고(孤)’, 셋째로 홀아비인 ‘환(鰥)’, 넷째로 혼자된 과수댁인 ‘과(寡)’가 늘어나 말년이 외로운 이들이 기하급수 적으로 증가하게 마련이다. 토굴에서 면벽(面壁) 수도하는 수도승이 아닌데도 매일 대화 한마디 없이 외롭게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반려동물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소중하리라. 어디 그뿐이랴. 최근 은퇴한 베이비부머(baby boomer : 1955-1963)가 펫부머(pet boomer)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얘기가 단순한 화젯거리가 아님이 확실하다.      

온전한 가족이 사는 집이라도 이런저런 일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영혼이 순수한 천성의 반려동물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로의 가치는 셈하기 어려우리라. 이는 천박한 물질이나 득실을 비롯하여 이해타산이 따르게 마련인 번드르르한 인관 관계보다 훨씬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단언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꾸 곁눈질을 하게 마련인 반려동물에 대한 진한 아픔의 그림자를 아직도 지우지 못해 끙끙 앓고 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거나 동행하는 게 아니라 에니멀호더(animal hoarder)에 흡사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앞뒤 생각 없이 기르던 동물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림으로써 골칫덩어리인 유기동물(abandoned animal)로 만드는 비정한 행동이 이제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오래 전 태국 여행길에서 얘기이다. 

늦은 저녁 어떤 호텔에서 일이었다. 

저 멀리 여러 마리 개떼가 어슬렁거려 가이드에게 물었다. 

충격적인 얘기였다. 방콕에는 유기견이 하도 많아 수의사의 중요 업무 중에 하나가 그들을 포획하여 불임수술을 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런 불행한 단초를 제공하는 원흉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기원한다.(한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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