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느 지방 지검장이 골목에서 음란행위를 하다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성선호성 장애를 가졌다지만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로도 유사한 충격적 사건은 이어졌다. 모 판사가 전철에서 몰래 카메라 혐의로 입건되거나,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징계 당한 고위층,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되자 도망친 검사 등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최고위층 인물들이 어쩌다 그런 행위를 하였을까 싶었다.
신문 기사에서 적시된 김학의 사건 내용도 충격 그 이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들도 줄줄이 철장 신세를 지거나 현재도 진행 중이다. 모두 수신(修身)을 하지 못한 탓이다.
법조계나 정관계, 의료계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소위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어릴 때부터 공부만 하여 최고 대학을 나와 그 어려운 국가시험까지 거뜬히 통과한 후 승승장구 하다가 추풍낙엽 신세가 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까.
이것은 인성이나 정서보다 오로지 ‘공부’에만 몰입해야 하는 고착화된 우리 입시제도 영향이 크다. 초등하교 4학년이면 벌써 중학교 수학을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게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현실이다.
이제 갓 고등학교에 들어간 조카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물었더니, “네?” 하는 반문이 돌아왔다. 학교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무슨 책을 읽느냐는 뜻이었다. 입학한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는데 시험 공부해야 한다며 주말에도 도서관으로 향하는 아이를 보며 측은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조금씩 변하고는 있지만, 아무리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내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좀체 흔들릴 줄 모른다.
사회지도층의 인권의식
학창시절 16년 동안 오로지 일류를 향한 ‘시험공부’에만 매진한 그 가슴들이 얼마나 삭막할지 뻔한 일이다. 사법시험(지금은 변호사 시험)을 비롯한 기타 국가시험 과목에는 대부분 헌법이 들어 있다. 헌법은 일반적으로 전문, 총강, 국민의 기본권(국민의 권리와 의무), 통치구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권을 통치구조 앞에 둔 이유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구현하는 헌법 정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마 위에서 언급한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 문제가 나오면 10지선다형일지라도 모두 100점을 맞거나 ‘기본권에 관해 논하라’는 주관식 문제를 주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내려 갈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그러한 기본권에 대한 지식은 머리에만 머물러 있을 뿐, 정신과 가슴에는 깃들어 있지 못하다.
시험 합격을 위해, 승진을 위해 머리만 키웠을 뿐 가슴을 키우지 못한 탓이다. 어릴 때부터 체질화된 교육 시스템에서 살아온 당연한 결과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기본권의 가치나 정신이나 사상을 제대로 공부하였다면, 권력을 가진 자가 사회적 약자를 농락하거나, 피고인이든 피의자이든 일반 국민 앞에서든 고압적 자세는 보기 힘들 것이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일, 자녀를 우수한 인재로 키우는 일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머리만 키워서는 안 된다. 머리로 이해하는 공부도 중요하거니와 가슴으로 이해하는 독서 같은 정서 교육도 병행해 이루어져야, 훗날 정상에서도 파멸로 치닫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근래 재벌들의 갑질 또한 마찬가지다. 돈만 긁어모을 줄 알았지, 선한 정서는 긁어모으질 못하다 보니 정신적 파탄 같은 행위가 드러나게 되고, 사회적 비난과 더불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이유
공부와 독서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독서는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인성 교육이다.
늘 쫓기듯 공부나 시험에만 매달리게 되면 가슴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목적하는 공부가 끝나고 공부하는 동안 피폐해진 가슴을 치유할 여유도 없이 권위적인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해 또 치열하게 경쟁해야 되는 상황에서 이들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수 있을까. 김학의 사건이나 장자연 사건처럼 오히려 힘없는 국민이 그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SKY캐슬이 장안의 화제였다. 스카이캐슬이라는 고급 빌라에 사는 네 가정을 통해 잘못된 교육관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였다. 이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의 욕망에 따라 오로지 1등을 위해 기계처럼 공부만 한다.
실제로 이런 환경에서 자라 병원 인턴까지 끝낸 아들이 엄마한테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서,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습니다. 이제 당신하고 인연을 더 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하고 사라진 경우도 있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상상해볼 기회조차 없이 공부로 내몰리게 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초중고 학생들 중에서 약 20% 정도는 최소한 한 번 이상 자해를 한 경험이 있다고 추정된단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꼭 한 번 읽어볼 책이 있어 소개한다. 다름 아닌 [백다은의 교육상상]이다. 유치원 및 초등학교, 중학교 교사와 학부모, 초등고학녀 및 중고등학생, 교육대 및 사범대생 및 교수, 모든 교육계 종사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