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드림 hd books Mar 06. 2018

출판 이야기2-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똑같은 내용일지라도 우리는 매일 인터넷에 백개 넘은 홍보용 포스팅을 한다. 4개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 기타 SNS를 통해 올리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시간마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홍보 글 이외도, 매일 아침 담당 직원이 올리는 홍보 글과 어떤 날 내가 밤을 지새우며 올리는 동영상이며 홍보 이미지며 홍보 글이다. 하지만 수만 명이 이를 본다 하여도 홍보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연휴 때 인터넷 앞에서 사흘 밤낮을 책 홍보에 매달린 적도 있지만 판매량은 지극히 미미하였다. 그럴 때마다 허탈하기 이를 데 없어 맥이 빠지기도 한다.   

  

무엇을 검색하다가 이 만화(애니메이션) 영상을 보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흘리듯 이 영상을 감상한 후 나는 그저 ‘도토리를 심는 사람’ 정도로 기억을 하였다가, 홍보 글 올리는 데 회의가 들던 어느 날 문득, 다시 이 영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광활한 사이버 세상에다 매일 올리고 있었던 홍보성 글이, 마치 황폐한 땅에서 도토리를 심은 심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영상을 가까스로 다시 찾아보니 이 원작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장지오노 작가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찬찬하게 감상을 하였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 ‘나’는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알프스 산악지대로 긴 도보 여행을 떠난다. 이곳은 프로방스로 뻗어 내린 오랜 산간지대로 해발 1300미터가 넘는 불모지였다. 사흘을 걸은 후, 이루 말할 수 없이 삭막한 황무지에 도착하여 버려진 폐허 마을 근처에 텐트를 치고 물을 찾았으나 망가진 말벌 둥지를 연상케 하는 폐가만 전부일 뿐 우물은 없었다. 바람도 배고픈 짐승들처럼 세차게 몰아쳐, 다시 다섯 시간을 걸었으나 어디나 가물어 물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직 노인이라 할 수 없는 양치기 ‘부피에’를 만나게 된다. 30여 마리쯤 양을 치던 그는 ‘나’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하룻밤을 묵게 해주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 그렇듯이 양치기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차림새와 용모가 단정하였으며 집안 구석구석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그가 사는 집은 돌로 지은 단단한 집이었다.  

  

이 지역의 마을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마을들을 잘 알았다. 숯을 생계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살림이 어려웠다. 여름과 겨울의 혹독한 날씨도 견뎌내기 힘들었다.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이들은 탈출구가 없었다. 곤경을 벗어나려는 욕망만 극에 달았을 뿐 사람들은 지쳐갔으며 여자들은 불평이 쌓여갔다. 또한 숯을 파는 데 경쟁을 일삼았다. 거기다 혹독한 바람이 신경을 곤두서게 하여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자살이 성행하였다. 이들 광기는 살인으로 끝나는 때가 잦았다. 마을 사람들이 이처럼 삭막하고 포악해진 까닭은, 숲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양치기는 생각하는 거 같았다.

양치기는 ‘나’에게 스프로 저녁을 대접하였다. 저녁이 끝나자 양치기는 도토리 자루를 가져와 도토리를 쏟아놓고 고르기 시작하였다. 도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좋은 것만 꼼꼼하게 가려냈다. 또 이 가운데 100개를 골랐다.

다음 날 아침 양치기는 들판으로 나가기 전 지난 밤 고른 도토리를 물에 담가 두었다. ‘나’는 산책하는 척하며 양떼를 몰고 가는 양치기를 조금 떨어져 따라갔다. 양치기 부피에는 쇠막대를 짚고 걸었다. 골짜기로 양떼를 몰아 개에게 맡긴 후 양치기는 다시 언덕 위로 높이 올라갔다. 거기서 그는 쇠막대를 박아 구멍을 뚫어 도토리를 넣고 흙을 덮었다. 그곳은 양치기의 땅이 아니었지만 백 개의 도토리를 정성껏 심었다. 그는 그 황무지에다 3년 동안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 가운데 2만 그루가 나온다면 다시 절반은 죽을 것으로 예상해도 1만 그루의 참나무가 자랄 것을 그는 예상하고 있었다. 나무 심기를 계속하면 30년 후에는 이곳에 수만 그루 나무가 자랄 테니 1만 그루의 참나무는 바다의 물 한 방울 같을 것이라 그는 말한다.    

양치기와 헤어진 ‘나’는 1차 대전 기간 중 5년 동안 군복무를 하였다. 제대를 하자 맑은 공기가 마시고 싶은 욕망이 생겨 양치기가 있는 불모지를 다시 찾아갔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양치기는 벌을 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양들이 어린 나무를 위협해서 양 대신 벌을 치게 된 것이다. 전쟁으로 온통 세상이 불안해도 양치기는 흔들림 없이 나무 심기를 계속하였다. 참나무들은 ‘나’보다 더 큰 키로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놀라운 광경에 ‘나’는 넋을 잃었다. 숲은 11km나 되었으며 숲의 폭은 3km가 되었다.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등이 세 구역으로 나뉘어 울창하게 자랐고 개울에는 물이 넘쳐흘렀다. 숲에서 모든 삶이 되살아나 자연은 놀랍게 회복되었다. 이 영혼의 작업을 해온 양치기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양치기의 꿈과 노력을 모르던 세상 사람들은 이를 자연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였다.

나무를 심는 동안 양치기는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역경을 이겨냈다. 절망과 싸워야 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낙담하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어느 해에는 1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한 그루도 남지 않고 모두 죽어버렸고, 그 절망을 이기고 겨우 살려낸 어린나무들을 양들이 뜯어먹어치웠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한 양치기는 얼마나 처절하게 고독하였던지 노인이 되었을 때 말조차 잃어버렸다.     


인터넷에 매일 실시간 올라오는 수백만 건의 포스팅(posting) 사이에서 내가 올린 홍보글은 금세 흔적도 없이 묻혀버린다. 비록 내가 하는 포스팅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사이버 세상 어딘가 하나의 씨앗으로 남아 있게 된다면 훗날 여기저기 떡잎이 돋아나고 언젠가는 숲이 되어 주지 않을까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 당장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홍보 포스팅을 이어가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작품은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일지라도 희망을 심으며 살아가면 끝내 어떤 결과를 이루는지 보여준다. 또한 자연(숲)이 사라지면 인간의 삶이 어떻게 피폐되는지, 인간의 삶에서 자연(정서)의 풍요로움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것인지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고립된 삶은 정서를 삭막케 하여 사람들이 포악해지고, 결국 파멸로 치닫게 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독서율이 꼴찌다. 책과 멀어져 살아가는 우리는 그만큼 삭막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 마음의 숲은 점차 황폐해져, 나무도 없고, 물도 없고, 새도 없는 정서가 되어 간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한 끔찍스러운 범죄들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도 이와 무관지 않아 보인다. 정서 결핍은 인륜 같은 근본을 무너뜨린다.

다만 나는 이 작품에서 도토리를 심는 상황이 어느 것보다 크게 다가와 힘을 얻었다.

‘지금 우리가 올리는 홍보들이 흔적도 없이 묻혀버리겠지만 언젠가 분명히 숲을 이루게 해 줄 것이다.’

숲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국어사전에 숨은 예쁜 낱말-저녁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