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작가는 소설 [혼불]에서 문체의 미학을 집요하게 추구한다. 그 가운데 묘사가 아름다운 부분을 발췌하여 보았다. 묘사가 살아야 글이 산다. 글을 쓰는 데 묘사를 어찌 해야 하는지 참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달이야 어느 땐들 유정(有情)하지 않을까,
초저녁 동산위에 가느소롬 곱게 뜬 각시 눈썹같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초승달이나,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렇게 흰 살이 차오른 반달, 그리고 참으로 온전하고 둥글어서 오직 우러러 바라보며 한 동안을 그대로 서 있게 하는 보름달이며, 그 달이 한쪽부터 서운하게 이지러져 드디어는 하현(下弦)에 이르다가, 이제는 사윌 대로 사위어 빛을 다 깎여버린 마지막 푸른 손톱이, 끝내 잠 못 이룬 채, 아직도 캄캄한 사경(四更)의 새벽하늘에 비수 같이 떠있는 그믐달,
우주만물 삼라만상이 모두 어둠에 잠기는 밤, 야청의 하늘에 홀로 뜬 달의 그 모양은, 때로 꿈같고, 때로 넘치도록 충만하고, 때로는 또 처연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여, 누구라도 달이 있는 밤에는 그 달을 올려다보게 하지만, 정작 좋은 것은 달의 모양이 아니라 달빛일 것이다.
이 온 세상을 두루 다 비출 만한 광명이라면 오직 낮에는 태양(太陽)인 해가 있고, 밤에는 태음(太陰)인 달이 있을 뿐이지만, 태양은 그 빛이 너무나 크고 강렬하여 누구라도 맞바로 쳐다볼 수 없고, 감히 어둠 또한 깃들지 못하니, 기어가는 개미나 한 올 티끌까지도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면서, 젖은 것을 마르게 하는데, 이 햇빛은 초목이나 짐승이나 사람이나 목숨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같이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게 한다.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달은 다르다.
빛의 덩어리요, 부성(父性)의 빛인 태양이 양면한 낮을 관장하다가 자리를 바꾸면, 달은 어둠 속에서 뜬다. 그것은 분명 커다란 광명이언만, 음(陰)이라, 그 빛 속에 서늘한 어둠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달은 아무리 찬연하게 밝아도 고요히 올려다볼 수 있으며 어둠 또한 무색하게 쫓겨나는 대신 더욱 더 어둠답게 머물러 검은 그림자를 짓는다.
어둠을 데불은 달빛은 제 몸의 푸른 인광(燐光)을 허공에 풀어, 언덕과 골짜기와 지상의 사물들이 옥색으로 물들어 젖게 한다. 사람의 구곡간장까지도 화안히 비추어 빛으로 적시는 달빛.
그러나 달빛이라고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
해동(解凍)의 밭머리에 자운영 돋으면서, 건듯 스치는 바람결에도 부드러운 흙냄새가 섞여 있어, 흙이 열리는 향훈을 느낄 수가 있는 밤, 물 오른 나무들이 젖은 숨을 뿜어내어 촉촉한 대기 속 어디선가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가 연연하게 들릴 것만 같은데, 연분홍 살구꽃 수줍게 만개한 봄밤이나, 진분홍색 도발하는 복사꽃이 흘리듯이 피어나는 봄밤에 뜬 달은 잦아들게 애달프다. 부연 안개와 같은 기운이 구름도 아니면서 둥근 달의 낯을 가리워 감싸고 번지는 조요(照耀)한 달빛은, 차라리 맑게 드러난 명월보다 묘취(妙趣)가 있다.
안타까운 연두빛을 머금어 표료옴한 그 달빛은 먼 산봉우리를 아득히 잠기게 하고, 살 속으로 습기같이 스며들어 피를 자욱하게 하니, 꽃이 지는 밤의 기우는 달빛은 또 어떠하리, 먼 곳에 그리운 사람을 둔 정회(情懷)로 가슴이 미어질 뿐,
그 황사(黃砂)와도 같은 하늘에 은하수 도도히 흐르는 여름이 오면, 달은 마치 강가의 모래밭에 빛나는 무수한 모래알처럼 영롱한 별들의 무리를 들러리 세우고, 성장한 왕후인양 당당하게 떠오른다.
여름 달은 젊다.
때로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같이 광활하고 검푸른 하늘에, 밤이어서 더욱 희어 보이는 구름의 대륙이 거대한 해안선을 이루며 가득히 밀물 져 떠내려와, 그 달을 뒤덮어 가리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윽고 바람에 실린 구름은 또 다시 저 너머 어디론가 흘러가고, 숨었던 별들은 꼭 망망창해 밤바다 내닫는 고깃배들처럼 영롱하게 불 밝힌 채 미끄러져 나가는데, 이제 아무 거칠 것 없는 하늘에 명랑한 얼굴을 마음껏 드러낸 만월이 콸콸 물소리로 쏟아진다. 그 달빛의 물살은 파도 같은 지상의 능선과 어둠 속에 엎드린 지붕들, 그리고 잎사귀 무성한 나무와 길가의 돌멩이며 하찮은 풀포기까지도, 홍건이 적시우며 흑윤(黑潤)으로 출렁이게 한다. 기름진 달빛이다.
멍석에 둘러앉아 웃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차오르는 달빛이 귓전에 부셔질 때, 콸콸콸, 차르르르으, 저 소리는 개울물 소리인가, 달빛 소리인가, 아니면 구슬을 파랗게 쏟는 소리인가, 이 달빛이 형광으로 찍힌 것 같던 박꽃들이 이울어 둥그렇게 달덩이로 떠오를 무렵이면, 밤 사이 뜰에는 찬 이슬이 내리고, 하늘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을은 깊어 간다.
펄럭, 귓가에 지는 오동잎 소리에 문득 놀라 일어나 앉으면, 솨스르으, 솨스르으, 늦은 가을바람이 어두운 잎사귀를 갈며 밟고 지나는 소리 소슬하게 들리고, 흰 창호지 영창에는 달 그림자 홀로 호젓이 어리어 있는 밤, 시드는 풀밭에서 우는 귀뚜라미 울음은 목을 놓은 달빛의 피리소리라고나 할까, 가슴을 후비어 파고들며 핏줄까지 투명하게 울리는 소리이다.
수심(愁心)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가을은 나그네가 먼저 듣는다 하고, 가을바람에 마음 놀란 나그네, 아득히 처자를 그려 편지를 쓴다 하는 이런 밤에는, 굳이 나그네가 아니어도 잠들기란 어려울 것이다. 잎 지는 소리가 깨워놓은 수심을 재우려고, 외로운 베개를 돋우 괴고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버스럭, 버스럭, 마른 낙엽처럼 가슴에 부셔질 때, 달이나 보자하고 홀연 영창을 열면, 아아, 언제 저토록 서리가 내렸는가, 순간 놀라게 한다.
마루와 댓돌과 뜰에, 시리도록 싸늘히 깔린 달빛의 희고도 푸른 서슬은 영락없는 서리여서, 몇 번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밟으면 검은 발자국 묻어 날 것 같아 차마 밟지 못하고 멀리 눈을 들면, 기러기 울음 흐르는 하늘에 달 하나, 서리 빗긴 상월(霜月)이 처연히 떠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달빛이라면, 역시 한겨울 깊은 밤의 달빛이리라.
촉촉하게 피어나는 꽃잎도, 향훈도, 우거진 잎사귀도, 꽃보다 더 곱다는 단풍도 이미 흔적 없이 사라진 대지의 깡마른 한토(寒土)에, 나무들은 제 몸을 덮고 있던 이파리를 다 떨구어 육탈(肉脫)하고 오로지 형해(形骸)로만 남는 겨울,
겨울은 사물이 살을 버리고 뼈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제 형상을 갖지 않는 물마저도, 흐르고 흐르던 그 살을 허옇게 뒤집어 뼈다귀 드러내며 얼어붙는다.
그 뿐인가, 바람 또한 결의 뼈를 날카롭게 세워 회초리로 허공을 가르며 후려치니, 날새의 자취도 그치고, 사람도 다니지 않으며, 짐승 또한 굴속으로 들어가 몸을 사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 사위를 둘러보아 그 무슨 위안이나 온기 한 점 얻을 길 없는 삼동(三冬).
헐벗은 잿빛으로 앙상한 골격을 뻗치고 있는 낙목한천(落木寒天)에, 겨울 달은 얼음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그 이름을 빙륜(氷輪)이라 하는가,
얼음보다 차고 맑은 둥근 달은, 얼음가루가 안개같이 서린 손으로, 삭막한 밤의 세상을 쓸어내리며 푸르게 푸르게 옥물 들인다. 물든 밤은 다시 투명하게 얼어, 대낮같이 환한 달이 뜬 밤이면, 웬일인지 달 없는 밤보다 더 춥게 느껴지곤 한다. 아마 빛으로 속이 꿰뚫리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이 결곡 청절한 달빛은, 그 영기(靈氣)로, 달빛 속에 선 나무와 언덕과 골짜기의 골수를, 찌르고 비추고, 남모르는 눈물이 차 있는 사람의 응달진 폐장까지도, 칼날처럼 꽂히어 투명하게 관통하니, 찬[冷] 달빛이 찬[充]속이 그만큼 시린 탓이리라.
때로는 눈이 내려 온 산야가 흰빛으로 덮인 밤에 달이 떠,
“월백 설백 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
이라고 찬탄을 토하게도 하지만,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천지도 희어, 한없는 고적을 오히려 서로 비추어주는 밤은 그래도 얼마나 화려한 것인가,
그 흰눈도 없는 극한의 밤에, 들여다보기 무서우리 만큼 깊고 검푸른 거울이, 티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기어 상공에 걸린 겨울 밤 하늘, 그 가슴 한 복판에 얼음으로 깎은 흰 달이 부시도록 시리게 박혀 있는 빙월(氷月)이야말로, 달의 정(靜)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