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5천만 부를 판매한 스티븐 킹, 1억 5천만 부의 제임스 패터슨 등 세계적 작가들의 ‘글쓰기’ 자세와 정신은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이지만, 출판사를 경영하며 글쓰기를 병행하는 입장에서 체험을 통한 실질적 해석을 붙여보았다.
1) 작가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부터 길러야 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앵무새 죽이기와 파수꾼을 쓴 작가 ‘하퍼 리’가 한 말이다.
이는 글을 쓰면서 남을 의식하면서 쓰지 말라는 뜻이다. 다른 이를 의식하게 되면 자기 생각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표현의 자신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쓴 글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자신감 없는 문장을 적잖게 발견하게 된다. 물론 문장의 여운을 남기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대부분 이는 자기 생각이 조심스럽거나 확신이 안 들어 무의식적으로 애매한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추측이 아닌 자기 생각을 적을 때는, ~하지 싶다, ~할 거 같다, ~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등의 불확실한 표현은 자제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맞을지 안 맞을지 확신이 다소 안 서더라도 ‘뻔뻔하게’ 내세우는 습관을 가져야 문장이 투명하게 된다.
2)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라. 당신보다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은 많다:
샌드맨 시리즈(1989~1996)를 출간한 이후 현대 만화의 창조자로, 그리고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령의 독자층의 저자로 명성을 얻은 ‘닐 게이먼’의 말이다.
이는 내가 주변 수필가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면, 나만의 철학과 체험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한파로 꽁꽁 언 한강이 깊은 밤 토해내는 신음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텐트 속에서 한강의 그것을 밤새 들으며 함께 밤을 새우는 노력이 있어야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보다 더 우수한 작가들’을 극복할 역량이 생긴다.
3) 만약 글을 쓰고 싶다면 많이 읽고 많이 써라:
지극히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이 말을, 3억 5천만 부가 넘는 호러 소설을 판매한 ‘스티븐 킹’이 했다는 게 놀랍다.
참으로 기본적인 말인데 많이 읽지도, 많이 쓰지도 않으면서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탄생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 설혹 과작(寡作)을 하더라도 많이 쓰고 많이 읽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일반인은 물론 글 쓰는 사람들이 매월 생활비에서 지출하는 도서 구입비가 얼마나 되는지도 떠올려 볼 일이다.
4) 마주 앉은 사람과 이야기한다고 상상해라. 그리고 그 사람이 지루해 떠나지 않게 해라:
설명이 필요 없는 이 말의 주인공은, 첫 번째 희생자 등 전 세계에서 1억 5천만 부가 넘게 팔렸고, 영미권 최고의 추리소설 상인 에드가 상을 받기도 한 ‘제임스 패터슨’이다.
글을 읽다 보면 문장이 중언부언 늘어져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문장도 호흡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긴 문장은 삼가야 하며, 또한 문장에서 쉼표를 파리똥처럼 싸질러놓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일방적인 배설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도 차분히 들어주며 대화를 이끌어가듯 리드미컬하게 문장의 장단을 맞춰 글을 쓰는 기술이 필요하다.
5) 명확하게 쓰면 독자가 모이고 불명확하게 쓰면 비판적인 평론가만 모인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에세이 시시포스의 신화, 희곡 칼리굴라, 소설 페스트 등을 발표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자신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낱말을 쓰거나, 낱말 하나를 쓰는 데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사전을 찾아 검증을 한 후 써야 진정한 프로이다. 독자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한 시를 쓰는 이들이 특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작품해설이나 평론이 작품보다 더 난해한 경우를 본다.
6)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빼도 지장 없는 단어는 반드시 뺀다: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 우화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문장에서 불필요한 군잎을 제거하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잎을 모두 떼어낸 채 나목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특히 주어나 접속사를 지나치게 생략하면 나목이 되고 만다.
7) 글에서 ‘매우’, ‘무척’ 등의 단어만 빼도 좋은 글이 완성된다: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자전적 아동소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으로 유명한 천재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00년대 사람이다. 그런데 이때도 이런 부사를 남발하며 글을 쓴 모양이다. 내가 글을 쓰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사는 낱말로 표현하기보다 되도록 ‘묘사’로 표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무척 아름답다’라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무척 아름다운 정황’을 서술하라는 뜻이다.
8) 독자가 즐거워지려면 쓰는 이가 즐거워야 한다:
1991년 어려서부터 관찰해온 개미를 소재로 개미 세계와 인간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한 베스트셀러 개미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는 개미를 120번 가까이 개작을 하였다.
문장의 행간에도 글 쓰는 이의 감정이 들어간다. 상대방이 스마트폰으로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읽다 보면 현재 상대방의 기분이 느껴지는 거와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 말은 글 쓰는 작업을 즐기라는 뜻이지, 슬픈 이야기는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글을 즐기며 쓸 수 있을 때 불편한 감정이 독자에게 전이되는 화를 막는다. 글 쓰는 작업이 여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지나친 감정 개입을 피할 수 있다.
9)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39번 새로 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나는 최종 퇴고를 할 때면 반드시 종이로 출력하여 읽는다. 컴퓨터 화면에서 퇴고하는 것과 출력된 종이로 퇴고하는 데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컴퓨터 화면으로 아무리 수십 번 퇴고해도 종이로 출력해 보면 화면에서 찾지 못한 모순들이 수두룩하게 발견된다. 컴퓨터 화면으로 샅샅이 원고를 뒤져도 발견되지 않던 오․탈자가 꼭 책으로 나와서야 ‘메롱’ 하며 제일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와도 같다. 책이 나오면 이 오․탈자부터 먼저 보이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자마자 아무 데나 펼쳤는데 바로 거기서 오․탈자가 보이면 마치 책 전체가 오․탈자로 가득하기라도 한 듯 눈앞이 캄캄해진다.
10)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부분은 삭제하는 게 맞다:
여행하고자 하는 욕망, 그 이면의 심리를 다룬 여행의 기술, 프루스트(Proust)의 삶과 작품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발표한 ‘알랭 드 보통’은, 영국보다 프랑스나 그 외 유럽에서 친근한 에세이 작가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이 말이 정확히 이해는 안 되지만, 소재 또는 정황을 서술하거나 묘사할 때 지루할 만큼 늘어트리는 경우를 지적하는 게 아닌가 한다. 이 또한 퇴고 범주에 들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원고 20매 분량의 에세이 한 편을 15매 분량으로 줄였을 때 훨씬 뛰어난 글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11) 글쓰기 역량은 독자를 헤아리는 능력이며, 독자를 이해시키는 것이 글쓰기의 전부다:
‘미셀 투르니에’는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소설 마왕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그는 아카데미 공쿠르의 종신회원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새로운 내용을 전달할지라도 독자를 쉽게 이해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저자의 역량 부족이다. 자신의 사유나 사상이나 철학 혹은 지식을 얼마만큼 잘 전달하느냐는 순전히 저자의 능력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정서나 문화가 변한 이유도 있으나 우리나라 시(詩)가 독자의 외면을 받는 까닭은 시인들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 마치 독자의 아이큐를 시험하듯 난해한 표현들로 가득 찬 시를 독자가 가까이할 리는 없다. 언어 예술인 문학은 즉흥적으로 정서가 전이돼야 감동을 유발할 텐데 도대체 시인이 지금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하는 고민만 던져주어 독자를 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언을 제시하는 이들이 대부분 문학 분야의 대가들이고 보면 저술하고자 하는 분야마다 글쓰기의 차이가 있는 것이니, 이들 조언은 큰 틀에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12) 신선하고 품위 있는 낱말 활용:
한 가지 추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글이든 품위 있는 낱말을 적절히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런 낱말 하나가 문장이나 글 전체를 돋보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낱말을 남발하면 독이 될 뿐이다.
선하고, 묘사적이고, 순화된 낱말 사용은 그 사람의 품위요, 인품이요, 인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일상화된 낱말의 빈약함에서 언어 파괴와 막말의 부작용이 일어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참으로 부드럽고, 품위 있고, 아름다운 낱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한 채 깊이 묻혀 있다. 죽어 있는 이런 낱말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 다시 말하면 언어의 사회성을 붙여주는 일은, 우리 글로 행복을 누리는 우리의 의무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휘력이 풍부해야 하며, 이러한 낱말로 문장을 지어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문장을 잘 다루는 훈련은 좋은 글을 창작하는 데 기본이다.
-정리: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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