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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May 08. 2019

어버이날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진들

어머니가 먼저 간 당신 딸 산소에서 풀을 뽑는다. 지난달에는 역시 먼저 간 아들 산소가 보기 흉하다며 손수 사초를 하였다. 딸은 여수 시립공원묘지, 아들은 순천 시립공원묘지에 묻혀 있다.

소위 보릿고개라는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농사 생산성이 없는 5, 6월이면 보릿고개가 찾아와 굶기를 반복하는 집이 허다하였다. 이 시기를 미끼로 좀 있이 사는 사람들은 없이 사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하였다. 이때 쌀 한 됫박 빌려주면서 모내기나 가을 무렵 몇날 며칠을 부려먹는 것이다. 지금이야 대부분 기계 농사지만 당시는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해야 하는 막노동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 떼기도 힘든 무논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모심기를 하는 놉들에게 주인은 막걸리를 먹였다. 놉들은 막걸리 기운으로 버텼다.

조팝나무, 싸리나무, 이팝나무의 흐드러진 하얀 꽃이 더욱 굶주린 배를 움켜쥐게 하였던 보릿고개 시절, 온종일 노예처럼 일해 키운 자식들 가운데 어머니는 장남과 둘째 딸을 거푸 잃었다. 

어머니가 술잔을 드시다가 뜬금없는 꿈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흘 전 밤 내가 죽는 꿈을 꾸었단다. 그래서 나흘 동안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단다. 꿈속에서 내가 살아나서 십년감수하였지만 살아난 내가 시커멓고 비쩍 마른 모습이어서 그 악몽의 여운이 길었던 모양이다.

“꿈에서 제가 죽었으니 제가 오래 살겠네요.”라며 실없는 말을 꺼내놓고 보니‘나흘 동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는 당신 말이 가슴을 쿵 쳤다.

아무리 꿈이었지만 얼마나 황망히 넋을 놓았을까. 또 얼마나 기진하였을까. 당신에게는 그런 악몽도 없었을 것이다. 자식 둘을 거푸 묻은 가슴인데 또 내가 죽은 꿈을 꾸었으니 나흘 동안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는 당신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다섯 살 딸, 마흔 살 남편, 사십 대 삼십 대의 아들과 딸을 잃으며 노모는 죽음의 트라우마를 빙의처럼 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 몸이 다소 아프기만 해도 금세 흙빛이 되면서 기진해진다. 

어버이날은 온종일 마음이 무겁다.          


어머니의 자비          


어머니 혼자 사는 시골집은 절이다

처마 끝 풍경이 울리고

카세트에서 독경이 흐르고

당신은 틈틈이 사경(寫經)을 한다

아침이면 길고양이들이

어머니의 외로움을 탁발해 간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한다

아들은 화살처럼 기도하고

어머니는 화살 맞은 가슴처럼 기도를 한다     

 

어머니의 천수경 사경 책상에는

아들이 쓴 책 '자비출판'이 작년부터 놓여있다

일 년 사이 사경 노트 수권이 늘었다.  

수정액으로 고쳐가며 쓴 사경의 행간마다 

아들의 출판사는 어머니의 가슴을 탄다     


책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스님께 먼저 드렸다

책이 잘되도록 기도를 부탁하였을 것이다

뭐 하러 스님한테조차 드릴까

아들은 자비출판이 성에 안차는데.     

  

자비출판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는

책 제목을 자비(慈悲)출판으로 알았다

출판사가 저자에게 자비만 베풀면 망하는데

어머니는 오늘도 

자식의 자비(慈悲)출판을 위해 사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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