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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Jul 03. 2019

요크셔테리어 강실이의 불타는 질투심

고양이를 집안에 두고 곁에서 가깝게 길러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적어도 개는 질투심이 많은 걸 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마당에건 집 안에건 개가 없는 채로 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수십 마리를 스쳐 보내면서 개들 질투심을 많이 겪었다. 불러도 들은 척하지 않다가 다른 애를 쓰다듬으면 후다닥 달려오는 건 아주 흔한 일이고, 같이 사는 애든 다른 집 애든 주인이 자기보다 우선에 두는 꼴을 보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 방법이 상대에 대해 싸움을 건다든지 하는 것보다는 제가 더 애교를 부려 눈을 끌려고 갖은 애를 쓰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그리고 우리는 그게 귀여워서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곤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고루 공평하게 대하려고 한다.      


개들끼리만 질투를 하는 건 아니다. 식구끼리 유난히 다정한 모습을 보여도 역시 질투를 한다. 아니, 그럴 때는 질투라고 하면 안 되겠다. 그저 자기도 끼어야 한다고, 자기도 식구에 속한다고 인정받으려는 건 아닐까 싶다. 하하 호호 웃는 자리는 물론, 자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두 침울해 있을 때조차 저도 당연하게 같이 해야 한다는 자기 상식을 우리 사람도 상식으로 여겨 주기를 바라는 거라고 생각 한다.      


우리 막내는 네 살짜리 듬직한 요크셔테리어다. 집이나 차나 무조건 큰 것을 고르고 아이들조차 주사를 맞히고 수술을 해서라도 남보다 훨씬 크기를 바라면서도 반대로 티컵 강아지라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지만, 나는 그렇게 비정상으로 작게 만든 짐승에 집착하지 않는다. 같이 뒹굴며 놀기에는 덩치가 어느 정도 되어야 불안하지 않고, 품에 안고 그득하게 느낄 수 있는 부피가 되어야 비로소 개라 여겨지는 편이기 때문에, 동호회 게시판에서 예정에 없이 낳은 새끼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글을 읽고 데려오기로 작정을 한 데는, 부모 둘 다 과히 작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 제법 크게 작용을 했노라고 고백한다. 더구나 함께 난 네 마리 가운데 제일 큰 애를 데려왔으니. 그렇게 해서 우리 식구가 된 강실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내가 바라는 대로 크고 듬직한 아이가 되었다. 물론 안고 다닐 때는 부담스럽고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걸리고 뛰는 데는 전혀 안쓰럽지 않아서 좋다.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하고야 마는 그 존재감이 썩 흡족하다.     

 

자정을 한참 넘겨 두세 시는 되어야 자리에 눕는 게 우리 식구 습관이다. 딸애 역시 꼬마였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어른 생활에 섞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대신 아침에 늦잠을 자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굳이 말거라 하지는 않았다. 요즘도 우리는 당연하게 두세 시에 눕는데, 자려고 딸과 나란히 누우면 강실이는 우리 사이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면서 배를 보이고 뒹굴 꿈틀, 저를 쓰다듬으라고 온몸을 들이댄다. 머리를, 배를, 가슴을, 궁둥이를 투덕투덕 두들기고 살살 간질이다가 어느 순간 강실이나 우리나 스르르 잠이 들곤 하는데, 아주 추운 때가 아니면 그렇게 잠이 올락 말락 할 때 내가 옆에 있는 창을 조금 연다. 자는 동안 건 조해서 마른기침이라도 할까 봐 예방하는 조치이다. 그러면 바깥바람을 좋아하는 강실이는 살살 오던 졸음을 한순 간에 쫓고는 뽈뽈뽈 창가에 가서 조금 열린 틈으로 코를 내밀고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내 잠에 빠지니까.      


 어제도 역시 늦은 시각에 자리에 들었다. 여느 때처럼 강실이한테 뭐라 뭐라 말을 걸고 키득키득 웃기도 하면서 잠들기 전 행사를 벌인 끝에 또 창을 열어서 강실이가 창턱에 코를 얹고 엎드린 걸 보다가 돌아눕던 나는 나도 모르게 팔을 옆으로 뻗어 딸애 손을 툭 쳤다. 아직 잠이 들지 않았던 딸이 “왜요?” 속삭이면서 손을 마주잡아 왔다. “아니, 그냥.” 나도 소곤거렸다. 그 순간 갑자기 강실이가 뽈뽈뽈 내 배를 딛고 지나 엄니와 누나 사이에 가로놓인 긴 쿠션 위에 턱 엎디는 게 아닌가. 

“얘 좀 봐. 저도 끼어야겠다는 거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이 쿡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요, 얘가요, 자기 손을 우리 손 밑에 넣었잖아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집중해 보자니 정말 그런 것도 같았다. 행여나 강실이가 움직일까 봐 살금살금 옆에 놓인 폰을 끌어당겨서 플래시 모드에 두고는 짐작으로만 어둠을 찍었다. 제대로 겨냥을 했는지 마치 한 시간 전부터 그러고 있었던 듯 천연덕스럽게 눈을 감고서 자는 척을 하는 강실이가 옳게 찍힌 듯했다. 이번엔 딸이 나를 툭툭 쳤다. 자기 쪽에서도 찍어야겠단다. 그래서 폰을 건넸고, 다시 한 번 어둠이 번쩍 물러갔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가 두 번이나 번개를 뿌리면서 키득거리는데도 웬일로 강실이는 모르는 척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깊이 잠들었다는 듯이 쌔액쌕 숨까지 고르면서 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웃기는 녀석. 플래시가 터지는데도 모른 척하다니 진짜 능청이다. 이윽고 그렇게 우리는 하나 둘 셋 잠에 빠졌다.      


날이 밝아서야 사진을 제대로 확인하며 간밤 일을 떠올리고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강실이 자세를 흩트릴까 봐 조심하느라고 한 손으로만 겨우 어둠을 찍은 참이라 제대로 찍혔는지 확신할 수 없었는데, 내가 찍은, 자는 척하는 모습과 딸이 찍은, 손 세 개가 겹친 사진이 그럭저럭 볼 만하게 나왔다. 맨 아래 있는 강실이 손은 제가 밀어 넣은 그대로여서 그 상황에 없던 사람에게는 마치 딸이 손을 얹은 것처럼 보일 것 같다. 이러니까 웃을 일이 생긴다. 이러니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강실이 이전에 꼬실이 때도, 그 이전에 몽실이 때도 우리는 멀고 오래 걸리는 나들이를 하지 못했었다. 분명히 한 식구인데 그 작은 애들더러 집 보라고 하고 놀러나가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를 우리 식구로, 막내로 받아들였고, 그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한 약속이다. 사람과 같은 감정을 지닌 목숨에 대한 책임이고 약속이다. 딸 역시 단 한 번도 그런 우리 생활에 의문을 품은 적이 없다. 개 때문에 여행도 안 간다, 밥집이나 찻집에도 갈 수 없다고 하면 많이들 잔소리를 한다. 훨훨 털고 편하게 살라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면서 돌아다니라고. 그런데 나는 오도 가도 못 하고서 강실이를 부둥켜안고 사는 지금 생활이 더 만족스럽다.      

믿음을 주고받고, 사랑을 주고받고, 언제나 같이 있고 싶고, 깨알 같은 재미와 가슴 적시는 감동이 늘 일상에 자리하는데 어디로 무얼 찾아서 돌아다니라는 건지. 

오늘밤도 아마 우리는 또 셋이 손을 잡고 자겠지. 아주 굳게 포개고 잘 것이다. 그러면 꿈도 같은 꿈을 꾸지 않겠나. 절대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뛰고 뒹굴고 입 맞추며 하하 호호 웃는 꿈 말이다.(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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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유기견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사랑 이야기-학대받고 버려져 다리가 아픈 수영이와 동생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이 아픈 영빈이. 아픈 상처를 가진 두 생명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가족들의 기쁨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가슴 따듯한 감동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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