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대학을 들어간 나는,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사법시험 준비를 하다가 정신적 물질적 지주였던 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파계승처럼 세상으로 돌아왔다. 입대 후부터 28년 동안 생업의 사회생활과는 단절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사회적인 스펙도, 재산 한 푼도 없는 내가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친구는 부도를 내고 도피 차 서울로 올라와 잠시 내 집에서 머물렀다. 장애가 깊은 친구가, 더구나 부도를 내고 피해 다니는 처지의 그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갈 데 없는 친구에게 나는 신용카드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꼭 비상용으로만 쓰라고 당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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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어린 그녀를 알게 되어 녀석이 거주하는 지방으로 왔다 갔다 하며 적나라한 사랑을 쌓아갔다. 녀석은 나를 아저씨라 불렀다. 낮이면 바다 끝 석양처럼 아름답게, 밤이면 부끄러운 줄 모른 채 날것으로 뜨겁게 사랑하였다. 그리 꽃길만 걸었던 3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나는 녀석과 매일 함께 살고 싶어서 가족에게도 인사를 시키고 우선 약혼을 해두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화를 하던 우리였다. 멀리 떨어져 주말만 함께 지내니 그리움은 늘 잉걸불 같았다. 그녀는 점심 이후에도, 저녁 이후에도 전화를 안 받았다. 평소 몸이 약한 녀석이라 온갖 궂은 생각이 다 떠올랐다. 평일이라 직장을 팽개치고 바로 내려가 볼 수도 없었다. 수 없이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하였지만 묵묵부답이었던 녀석이 자정이 되어서야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무슨 말이야, 오늘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저를 이용해서 뭐를 어쩌게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만 두세요. 전화 끊어요. 그리고 다시는 아저씨 볼 일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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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전화를 싸늘하게 끊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없었다. 죄라면 녀석을 쩔쩔매도록 사랑했다는 것뿐.
“뭐가 문제지?”
무슨 이유인지 말해달라며 밤새 애걸복걸하듯 메시지를 보냈어도 아침 해만 무심히 떠올랐다.
“지금 내려갈게. 나 미워해도 좋은데 제발 이유나 좀 알자.“
당장 내려간다는 말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녀가 다시 전화를 해왔다. 목소리가 지독히도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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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OO카드 쓰지요?”
“OO카드? 나 안 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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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OO신용카드사에서 일했다. 약혼이 임박해지자 아무 생각 없이 내 주민번호를 회사 전산망에 입력해 조회를 해봤던 모양이다.
“왜 그리 뻔뻔하세요? OO카드 없어요?”
그제야 몇 년 전 친구에게 만들어 준 카드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무슨 사달이 났구나 싶으니 목소리가 떨렸다.
“아, 그 카드?”
나는 떠듬거리며 친구에게 카드 만들어 준 정황을 설명해주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세요?”
“도대체 그 카드가 어찌 된 건데?”
불길한 생각이 거침없이 엄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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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우연히 아저씨 주민번호를 검색해 봤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우리 회사 카드 연체자였어요. 살다보면 카드 연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용 내역이 ㅇㅇ경마장, 미아리 ㅇㅇㅇ 등 화려하대요. 더는 제게 연락하지 마세요.“
나는 그제야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고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카드 사용 내역을 보고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니 미안해서 눈물만 쏟아졌다.
친구가 경마장을 드나들면서 카드가 연체되기 시작하였다. 연체 금액은 한두 푼이 아니었다. 계속 돌려막기, 카드깡(카드 사용한도액이 제한 없이 올라가던 당시에는 카드깡이라는 게 있었다.) 등으로 버티다가 내가 그녀와 약혼 시점에서 나자빠진 것이다.
나는 몇 년 동안 매월 연체 금액을 갚으며 거의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그마저 제때 갚지 못해 신용카드사 직원에게 수치와 굴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별의 아픔과 친구의 배신감이 겹쳐 때로는 공황 상태가 되곤 하던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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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친구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런 사람에게 어찌 나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느냐.” 하며 그녀는 떠나갔다. 나는 붙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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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조금씩 나는 세상눈을 뜨기 시작한 거 같다. 공부한답시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오는 동안, 세상은 참 삭막하게 변해 있었다. 지금도 어수룩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당시 나는 모두가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다.
고향에 내려가면 소갈머리 없이 웃으며 “왔냐?” 하고 반기는 친구는, 지금까지 나와 그녀의 사정을 전혀 모른다. 내가 카드빚 갚느라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모든 게 내 탓이려니, 혼자 가슴에 묻어두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기는 하다.
아내 몰래 아주 가끔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 마치 아이 대하듯 나를 어르며 하얗게 웃던 그녀의 귀여운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평생 경마장 근처에도 안 가본 내가 경마로 큰 상처를 입은 셈이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 어쩌다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나는, 2014년 떠올리기도 싫은 경마와 인연을 맺었다. ‘경마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만들게 되고 과천 경마장에서 경기도 관람하였다. 그리고 경마장이라는 곳의 분위기도 조금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책은 별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마 서적 두 권을 출간한 것이다. 다음에서 ‘아이러브경마’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이지우 저자가 쓴 [실전해법 경마], [경마 실전베팅 가이드]가 그것이다.
아무래도 친구가 경마장에서 잃은 내 돈을 책을 팔아 만회할 모양이다. 왜냐하면 이 두 권이, 내 친구처럼 무모한 베팅으로 빠지는 걸 막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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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로 남의 여자까지 없애지 않으려면 이 두 권을 꼭 보길 권한다. 책을 보고 나면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출간을 서두르느라 아쉬운 문장들이 있긴 하지만, 고수(?)의 노하우를 얻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줄 안다.
경마에서 이기기 위해 경마와 관련된 하찮은 것도 세심하게 관찰한 저자의 안목이 눈부시다. 저자는 경마와 관련된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경마장으로 불어오는 바람 한 점조차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책들을 통해 마사회가 아니라 경마팬들이 부자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경마든 주식이든 복권이든 여기 마니아들은 자기 고집이 있다. 귀가 얇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아가 강해 선험자의 조언을 잘 안 듣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더 큰 것을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