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해드림 hd books Mar 18. 2026
사순시기 하느님의 사랑 묵상, 하느님의 사랑은 왜 기다림의 형태로 오는가
사순시기를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종종 이런 체험을 한다. 기도는 드리지만 곧바로 응답이 오지 않고, 마음을 다해 청해도 상황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럴 때 인간은 조급해진다. 사랑한다면 왜 더 빨리, 더 분명하게 도와주지 않으시는지 묻게 된다. 그러나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이 종종 기다림의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가르친다. 이 기다림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깊은 배려와 신비를 담고 있는 사랑의 방식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자유를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 사랑은 강요될 수 없으며, 자유롭게 선택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만약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에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모든 것을 바꾸신다면, 인간은 더 이상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순히 이끌려 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분은 인간이 스스로 돌아오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기를 기다리신다. 이 기다림은 무관심이 아니라 자유를 존중하는 사랑이다.
또한 기다림은 인간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시간이다. 사람은 원하는 것을 즉시 얻을 때 그것의 가치를 깊이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갈망이 쌓이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그 대상은 점점 더 소중해진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그 마음이 깊어지도록 기다리신다. 그래서 기다림은 단순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변화되는 시간이다.
성경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자주 기다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은 인간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에도 억지로 붙잡지 않으시고, 돌아올 길을 열어 두신 채 기다리신다. 이 기다림은 포기가 아니라 희망이다. 인간이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기다림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기다림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다림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때로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조금씩 성장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이 과정을 건너뛰지 않도록 허락하신다. 왜냐하면 사랑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앙에서 기다림은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희망 속에 머무는 행위이다. 사순시기는 바로 이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빠른 해결보다 더 깊은 의미를 찾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신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방식으로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기다림의 형태로 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기 위함이다. 즉각적인 응답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관계를 깊게 만들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인간은 하느님을 더 자주 찾고, 더 오래 머물며, 더 깊이 의지하게 된다. 그렇게 관계는 점점 더 깊어진다. 기다림은 하느님이 인간을 멀리 두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한 시간이다.
결국 하느님의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인간을 서두르지 않으며, 인간의 속도를 존중하고, 인간이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인간의 눈에는 느리고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의 시선에서는 가장 온전한 사랑의 길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기다림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지금 당장 응답이 없더라도,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인간을 향해 흐르고 있으며, 그 사랑은 때로 조용히, 그리고 오래도록 기다리는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가톨릭 신자 수필가 5인 신앙에세이집
[이제와 항상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