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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Feb 19. 2021

김형하 '버무린 가족'…아들은 유투브에서 살아 있고

김형하 에세이집 '버무린 가족'

작가 부부가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아들과 함께하고자 한 에세이집     

시인이자 수필가인 김형하(본명 김형출) 작가의 「버무린 가족」은, 그동안 틈틈이 써두었던 에세이와 서른아홉 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슬픔과 그리움을 묶어 펴낸 에세이집이다. 특히 이 에세이집에는 ‘아프지마’, ‘버무린 가족’, ‘부성애’, ‘어떤 갈등에 대하여’, ‘어떤 기부(記付)에 대하여’, ‘눈물로 쓴 엄마의 편지’ 등이 아들의 삶과 관련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 가운데 ‘어떤 기부(記付)에 대하여’는, 지난해 갑자기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져 삶을 내려놓기까지의 짧은 시간 속에서 절박했던 심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려는 아들과의 제대로 된 이별을 나눌 수 없었던 상황이 독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제발 아들 얼굴 한 번 볼 수 있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어렵고 임종 시 부모 둘 중 한 명만 가능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멍청하게 손 놓고 있을 뿐 아니라 집에서 초조하게 전화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고작 한두 번 담당 간호사에게 아들 근황을 물어보는 정도였다.

-작품 일부         


작품 ‘눈물로 쓴 엄마의 편지’는 작가의 아내가 아들에게 쓴 편지글이다. 한 구절 한 구절에서 꽃다운 자식을 먼저 보내는 엄마의 애간장 끊어지는 비통함이 묻어 있지만, 한편으론 사랑과 그리움을 침착하게 토로한다. 후술하지만 작가 부부가 아들의 죽음에 더욱 애통해하는 이유가 있다.     


“꺼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엄마를 부를 마지막 힘조차 내지 못했을 널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고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심정이야. 

아들아! 의식 없이 덩그러니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널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돌아와 달라고, 어서 일어나 엄마랑 집에 가자고, 엄마아빠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울며 애원했던 어미는 이제는 모든 고통을 훌훌 털어내고 훨훨 날아가라고 기도했구나.” 

-작품 일부 중에서          


혈액암을 극복한 아들에게 찾아온 뇌출혈     


작가에게는 하나뿐인 자식으로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혈기왕성한 이십 대 후반 호치킨 림프종이라는 혈액암 진단을 받아 부모를 혼절케 하였다. 아들은 암 절개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하였지만 재발하여 다시 항암 치료를 반복하였다. 그럼에도 희망이 없어 좌절의 연속이었다. 아들은 마지막 선택으로 자가 조혈모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처럼 온몸의 피를 새롭게 바꾸는 등,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8년을 투병하다,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갑작스럽게 뇌출혈이 덮쳐 끝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번 에세이집에는 소개가 안 되었지만 아들이 혈액암 투병을 할 때 작가가 발표한 시가 ‘씨앗냄새’이다.     

어젯밤/천둥소리 벼락 떨어지는 소리에 고막 찢기고/어둠의 창가에서 아들 냄새가 난다/마른 눈물 쥐어짜기 싫어/꿈나무 열매 속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침입자/쪼여오는 공포에 술잔을 마시는 젊은이 빈방엔 침묵뿐,/허연 눈에 고인 주삿바늘/나는 씨앗 꿈을 접고 너를 보듬어 한 몸이 되리라/웅성웅성 모인 혈구 무리, 다시 태어나 가까이 웃으리라/외출에서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 여미며/컴퓨터 액정에서 아들냄새가 난다/아들냄새를 모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았다

가슴에 닿은 얇은 냄새를 안고 빠끔히 현관문을 연다/아들이 아침 일찍 빗방울을 맞으며 돌아왔다/눈으로 끙끙대며 아들냄새를 확인한다._‘씨앗냄새’전문    

 

자식 잃은 아픔을 천붕지괴(天崩地壞)로 표현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뜻이다. 겉으론 잘 이겨가는 척하지만 이번 에세이집 제목을 「버무린 가족」으로 뽑은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들을 떨쳐내고 싶지 않은 작가 부부의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인다. 

‘버무린 가족’은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시민선정 작품으로 붙어있는 詩이기도 하다. 이번 에세이집에서는 詩 ‘버무린 가족’을 소재로 한 수필로 실렸다. 이 시는 시인의 세 가족이 각자의 색깔로 살아가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울타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애초 수필집 제목을 좀 더 고려해보기로 하였으나 결국 「버무린 가족」으로 정한 것이다. 아들은 떠났어도 이 수필집 안에서 세 가족이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작가 부부의 정한(情恨) 때문이다. 이제 작가 부부는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버무린 가족」안에서 ‘씨앗냄새’를 맡을 것이다.          


아들의 흔적 그리고     


작가의 아들은 세상을 떠나기 전 연극을 접고 명리학을 새롭게 공부해 ‘김명리’라는 이름으로 유투브(쉽고 재밌는 명리학 김명리)에서 명리학 강의를 열정적으로 해왔다. 현재 TV에서는 모 치약 모델 광고로 출연 중이기도 하다. 짧고 굵게 살다간 아들의 흔적을 엿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작가는 유튜브나 텔레비전 광고 등에 남아 있는 아들의 흔적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아들과 함께했던 좋은 추억만 생각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이번 에세이집 「버무린 가족」에서 작가는 아들을 소재로 한 작품 이외 다양한 수필을 선보였다. 변형신국판 278쪽인 「버무린 가족」은 4부로 구성되었으며 경수필, 중수필, 그리고 실험수필 같은 ‘시 수필’ 등 58편의 작품을 싣고 있다. 작가의 눈에 포착된 다양한 일상은 희로애락이 되어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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