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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Jan 15. 2019

동물구호단체 ‘케어(CARE)’의 유기견 안락사 문제점

우리나라는 부의 급속 성장은 있었으나 그에 맞게 따라주어야 할 지성과 문화의식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우리 지성과 문화의식이 후진국 수준이라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으나 엄연한 사실이다.     

여름 날 이른 아침, 특히 주말 아침 한강공원을 가보면 공원은 온통 쓰레기 밭이다. 이 하나를 보더라도 우리 기본 질서 의식은 밑바닥 수준인 것이다. 

교통사고, 자살, 이혼, 성형, 낙태, 매춘, 음란 접근율 등이 세계 1위라는 게 이 의식 수준을 말해준다. 


이 많은 1위에도, OECD 국가 중 꼴찌인 게 하나 있다. ‘독서율’이다. 배는 부르지만 책을 멀리하니 감성과 지성이 삭막해졌다. 가난한 시절에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잔혹한 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체육계를 비롯한 거대한 조직의 뿌리 깊은 성폭력 문제, 아동 학대, 노인 학대 문제 등도 이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 감성지수도 세계에서 꼴찌가 아닐까 싶다.     

이번 동물구호단체 ‘케어(CARE)’의 유기견 안락사 사건을 보면서, 유기견이 발생하는 이유도 결국 우리 의식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반려동물의 유기견이 가장 많은 나라도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다. ‘케어(CARE)’에 몰리는 연간 후원금이 20억, 동물 구호 후원금 수준도 1위가 아닐까 생각하니 아이러니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여전히 ‘물건’으로 의식한다. 타인의 동물을 상해하면 형법상 ‘재물손괴’이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사용하다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다. 만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본다면 그리 많은 유기견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으로서 반려동물을 통해 얻은 정서적 행복을 잊은 채, 단지 불편해졌다는 이유로 매정하게 버려버리는 행위는 생명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좀 과한 해석일지 모르나, 사람이든 동물이든 ‘유기’를 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렸다면 이는 미필적 고의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생명을 버리는 행위이다.      

어떤 이유로든 동물구호단체가 자의적으로 동물을 안락사 시켰다는 것은 절대 이해구할 일은 아니다. 수많은 후원자에 대한 배신행위를 따지기 전에, 이들에겐 누구보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도의 생명 의식과 보호 의무, 그리고 ‘반려 의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연간 20억이라는 후원금을 받고서도, 보호 시설의 편의를 위해 유기견을 안락사 시켜야 하는 것일까. 유기견을 재탄생 시켜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길은 없을까. 단순 보호가 아닌, 그런 길을 찾는데 후원금이 쓰일 수는 없을까.


동물은 인간이 갖지 못한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사람이 동물의 그런 능력을 갖는다면 초능력이 될 것이다. 동물의 능력을 활용하여, 예컨대 반려동물이 가정에서 위험을 감지해 알려주는 등 일정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자리했으면 한다. 단순히 주인을 위한 즐김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이 있는 당당한 가족 구성체로서 말이다. 반려 인구의 후원금도 유기견의 훈련 교육하는 곳으로 분산되었으면 싶다.      

시츄인 청각도우미견 ‘소라’도 유기견이었다. 한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유기견 ‘소라’는 동물구조협회 보호 아래 있다가, 삼성 안내견 학교에서 청각도우미견으로 거듭 났고, 결국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청각장애 화가인 박광택 화백의 ‘소리’가 되어 준 것이다.      


소라는 자명종 알람 소리, 초인종 소리, 노크 소리, 아기 울음소리, 화재경보 소리, 휴대폰 벨 소리, 그리고 다른 사람이 부르는 소리 등을 구분해 알려주었다. 또한 여러 가지 소리 중에서도 반응을 해야 하는 것과 반응을 하면 안 되는 것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구별도 하였다. 


이제 소라는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소라를 잊지 못하는 박광택 화백은 자신을 위해 살다 떠난 소라를 위해 함께 지냈던 지난 삶의 아름답고 시린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주었다. 결국 소라는 [아직도 바람소리에 들리니]에서 영원히 살아 있게 되었다.     

현재 청각도우미견을 양성하는 데가 거의 없단다. 물론 비용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박광택 화백도 소라를 보낸 이후 또다시 소리가 없는 고독한 세상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단순히 유기견 보호를 하는 데만 후원금이 쓰일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재탄생 시켜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는 데 쓰였으면 한다. 박광택 화백도 [아직도 바람소리가 들리니]의 인세 일부를 그런 곳에 후원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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