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글쓰기,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가난은 글을 남긴다’라는 말은 실감한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난에 대해 묵상을 자주해 온다. 어린시절부터 풍요롭게 살았다면 어쩌면 내 감성은 아주 삭막해져 있을지 모른다. 가난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많이 다쳐봤고 아파봤다. 가난해서 주변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고, 가난해서 글을 많이 썼고, 가난해서 어머니께 더 애틋한 마음이 쌓였을지 모른다.
내가 어머니를 소재로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가난에서 비롯되었다. 어머니를 제대로 못 모시는 죄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표출한 셈이다. 가난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내 존재의 힘이기도 하였다. 어머니 관련 이야기를 일기 쓰듯 쓰면서 어머니로부터 힘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원고들을 묶은 게 산문집 [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이다.
민혜 작가가 ‘초보자를 위한 글쓰기’ 원고를 보내온다. 최근 보내온 원고에는 가난과 글쓰기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홀로코스트 문학을 일생의 테마로 연구한 ‘오가와 요오꼬’는 안네의 일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짓눌러버리는 듯한 난관이나 괴로움도 언어의 형태로 배출하면 머리 위를 짓누르던 부담이 발밑으로 이동하여 자기 자신의 토대로 변한다. 슬픔과 괴로움은 결코 없어지지 않지만 그것을 놓는 위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종이와 펜이라는 작고 가벼운 도구가 바윗덩이가 덮치듯 참담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깊은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인지요. 글을 쓰는 동안만은 노트(요즘은 자판이지만)라는 공간이 자신만의 케렌시아가 되는 겁니다. 케렌시아란(Querencia) 스페인어로 피난처나 안식처를 의미하는데 원래는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말합니다. 작가는(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을 의미) 글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질식할 것처럼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 자기만의 케렌시아로 도피해 그 안에서 숨을 고르며 다시 살아갈 힘을 비축하게 되는 거겠지요.]
사실 민혜 작가 어머니도 53년 동안 일기를 썼다. 이 일기를 엮은 게 [어머니의 불]이다.
[1961년 1월1일에 저의 친정어머니도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그 뒤로 53년간 일기를 썼습니다. 저는 그중 일부를 발췌하여 제 단상과 엮은 <어머니의 불>이라는 책을 2021년도에 출간했고,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우수도서에 선정되는 영광까지 얻었습니다. 안네와 안본말자가 쓴 일기는 어린 소녀의 일기지만, 저의 어머니가 쓴 일기는 성인의 일기입니다. 공통점은 고통스런 삶을 헤쳐나가며 일기에 의해 위안을 얻고 자신을 지탱해나갔다는 것이겠지요. 문학이 주는 자기 치유 기능은 이렇듯 인류 보편적 현상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일기를 옮겨 적다 말고 자신도 모르게, 만약 우리 엄마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미쳐버렸겠구나, 하고 혼잣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빚과 첩과의 가출, 가장에 대한 분노, 어린 삼남매를 홀로 키워야 하는 삶의 위기와 애환. 빚쟁이들의 독촉과 생활고에 치여 자식들과 함께 자살 유혹에 빠지는 여인.]
내 산문집 [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와 민혜 작가가 엮은 [어머니의 불] 고통점은 가난이라는 것에서 글쓰기가 시작되었고, 그 가난의 캐렌시아가 글쓰기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은 글을 남긴다’라고 한 이유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늙으신 어머니를 둔 분들, 특별히 어머니에게 애틋한 분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과 어머니의 정서를 나누고 싶은 산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