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다 다이어리 기능 정착, 양장 다이어리 시집
해드림출판사 이승훈 대표의 시집 [우리는 누구에게 절박한 무엇이 된다]는 시집에다 다이어리 기능을 정착한 양장 다이어리 시집이다. 시집 판매가 저조한 작금의 현실에서 독자의 손이 시집을 들게 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여 출간하였다.
잘 쓴 시가 아니라서 ‘시도 감상하고 다이어리로도 활용’하는 일석이조라는 말에 자신은 없지만 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잠시나마 휴대폰 대신 펜을 들어 육필을 남길 수는 있다.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안 팔리는 시집을 적잖은 비용을 들여 수년 동안 보관할 수 없어 시집을 폐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다이어리 시집은 다이어리로 활동할 수 있으니, 시집이 안 팔려도 내가 사용하고, 주변에 선물로도 주고, 직원들 업무 다이어리로도 사용하고, 불경 사경(寫經)을 자주 하는 내 어머니가 마음껏 써도 된다.
속절없이 즐긴 가난의 흔적들
가난은 세상 살아가는 데 몹시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속절없이 짓밟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꿈을 방패 삼아 버르적거리다 보면 살아내려는 내공이 쌓이기 마련이다. 또한, 일정한 긴장감으로 오히려 자신을 팔딱팔딱 살아 있게도 한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믿는 이유다.
가난과 행복, 가난과 삶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다. 1억만 있어도 인생이 바뀐다면, 작은 비용으로도 삶의 상향 변곡점을 맞이할 만큼 세상을 잘 살았거나, 겨우 1억짜리 인생이거나 자신의 선택일 뿐이다.
어느 날 내 삶이 풍요로워지면 나는 더 빨리 늙으면서 삶이 밋밋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이 시들을 쓰면서 가난을 충분히 즐겼다는 생각이다. 죽음을 떠올릴 만큼 힘들어하면서도 가난의 미학을 그려내려 애썼기 때문이다.
가난의 미학을 그려내려 애쓰다
막상 시집을 출간하려니 내 시집들이 버려지면 어쩌나 염려가 되었다. 한 권이라도 덜 버려지기를 궁리하다가 ‘다이어리 시집’을 떠올렸다. 내 책상 책꽂이에는 해가 지난 다이어리들이 몇 권 있다. 나는 평소 메모를 자주하는 터라, 두서너 해 지난 그것이지만 여백이 그대로 있어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간 쓴 메모 노트들도 모아 두었다. 소중한 나의 자취소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훗날 이 노트들은 지난 시간을 회억하며 새로운 글로 탄생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책은 버려도 빈 노트는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다이어리 시집을 시도해 보았다. 새벽 시간 종종 붓을 들 때마다 느끼지만, 육필로 끄적끄적 여백을 채우다 보면 내면에서 쌓이는 또 다른 게 있다.
올해 90세인 어머니는 오랜 세월 틈틈이 사경(寫經)을 한다. 90세가 되어도 여전히 총명하신 데는 이 사경 덕분이 아닌가 한다. 손으로 펜을 들어 무언가를 자꾸 쓰다 보면 뇌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여백은 가슴을 죽이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펜으로 쓰는 육필과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판 글씨의 차이점
핸드폰이나 컴퓨터 글씨는 빛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글씨뿐만 아니라 화면으로 보는 모든 색상 또한 같다. 한마디로 글씨나 색상은 화면의 빛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것이다. 화면으로 보는 색상은 종이에다 잉크로 직접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만들어내는 색상이다. 육필은 사람의 시력을 통해 직접 보는 것이고, 펜의 색상을 통해 직접 색상을 그려낸다. 우리가 푸른 나무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의 차이다. 따라서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는 것과 펜으로 직접 쓰는 것은 인간의 정서와 건강에 미치는 힘, 특히 뇌를 자극하는 힘이 다르다. 눈으로 직접 보는 힘과 화면을 통해 간적접으로 보는 힘은 인간의 기억력에도 차이가 난다.
이승훈의 이번 다이어리 시집 [우리는 누구에게 절박한 무엇이 된다]는 지나치게 디지털화 되어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펜을 들어 보자는 메시지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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