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과 가성 나훈아 ‘영영’에 관한 비교 연구

by 해드림 hd books

나훈아 영영, 김소월 문학세계 창으로 본다

김소월과 가성 나훈아 ‘영영’에 관한 비교 연구


김소월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아버지 김성도와 어머니 장경숙 사이에서 1902년에 태어난다. 김소월은 조국의 커다란 사랑과 고향의 아름다운 정서로 인하여 조국애와 향수 애에 관한 내용이 시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김소월의 생애는 즐거움과 환희보다는 하고자 일들이 실패의 연속으로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문학가라고 할 수 있다. 김소월은 동경대학 상학부에 입학하여 일본에서 학문의 시작과 동시에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귀국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소월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광산에서 할아버지를 도와준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광산의 실패로 가세는 기울어가고 김소월은 처가가 있는 구성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맡아서 운영한다.

동아일보 지국도 결국 실패하여 김소월은 염세주의자가 된다. 김소월의 사업 실패와 더불어 가계생활도 궁핍하여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1930년대 이후 김소월의 작품은 거의 눈에 뜨이지 않고 생계의 곤란으로 결국 1934년 김소월의 고향인 정주 곽산에서 마약을 먹고 자살을 하여 생을 마감한다. 김소월의 작품세계는 생에 대한 깨달음은 <산유화>, <첫치마>, <금잔디>, <달맞이> 등에서 피고 지는 꽃의 생명 원리, 태어나고 죽는 인생의 원리,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 원리에 관한 통찰까지 이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시 <진달래꽃>,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먼 후일>, <꽃 촛불 켜는 밤>, <못잊어> 등에서는 만나고 떠나는 사랑의 원리를 통한 삶의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단순한 민요 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인으로 평가를 한다.

민요 시인으로 등단한 김소월은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여성적인 정조로 민요조의 율조와 민중적인 정감을 표출한다. 김소월의 시의 율격은 3음 보격인 7.5조의 정형시로서 자수율 보다는 호흡률을 통해 자유롭게 성공시켰으며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독창적인 율격으로 발전한다.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표현하여 민족적 정감을 눈을 뜨게 한다. 그래서 김소월은 1981년 예술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된다. 그리고 김소월 시비가 현재 서울 남산에 세워졌다. 김소월의 대표적인 시 <진달래꽃>은 이별의 한을 노래한 시로써 최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시대 <공무도하가>, 고려 시대 <가시리>, 조선 시대 <황진이의 시조> 그리고 조선 말기의 전통적인 이별의 한을 노래한 시로써 맥을 같이한다. 전통적인 유교 국가에서 한 여인이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처절한 슬픔과 아픔을 인종과 순종으로, 겉으로는 태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내면으로는 붙잡으려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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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유교 전통의 휴머니즘이 밑바탕에 면면히 흐르고 있으며,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인종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나간다.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한 여인의 아픔과 슬픔, 비애 등이 처절하리만큼 가슴을 짓눌러도 여자의 숙명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슬픔을 체념으로 수긍하지만 인종과 순종의 의지력으로 극복하는 여인의 강인한 정조 관념은 <진달래꽃>의 핵심이며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별의 고통을 비애로써 체념하지 않고 승화시켜 극기하는 숭고한 여인의 이별을 한으로 그리고 있다. <진달래꽃>에서 이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시적 자아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별에서 오는 슬픔과 아픔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여인으로서 인종과 순종으로 극기하려는 이별의 한을 승화시킨 민요적인 율조에 전통적인 한을 가미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여인이 임을 떠나보내는 아픔과 슬픔을 진달래라는 꽃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대변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애이불비의 대표적인 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진달래꽃>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한국인의 정서와 한, 혼을 담아 노래로서 승화시켜 대중들에게 불리는 노래가 트로트라고 할 수 있다. 나라마다 그 나라의 지형, 환경, 언어, 문화 등의 영향에 따라서 독특한 대중음악이 자연스럽게 창안되어 불리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컨트리송, 영국의 팝송, 프랑스의 샹송. 이태리의 칸초네, 일본의 엔카 등은 그 나라를 대표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도 부르는 노래의 한 장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트로트가 1970년대까지 활성화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다가 1980년대 외국의 다양한 장르의 노래 풍이 밀물처럼 들어오게 된다. 신인 가수들은 전통의 트로트보다는 새로운 장르의 외국 노래를 모방, 답습하여 트로트는 점점 젊은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구식 노래로 잔존하게 된다. 특히 1980년대는 조용필의 독주로 트로트는 생존의 자리를 굳히기 힘든 상황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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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사라져 가는 트로트에 불씨를 제공한 노래가 바로 나훈아의 <영영>이다. 나훈아의 <영영>은 젊은 층에 잊혀 가는 트로트를 재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래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도 나훈아 작사, 작곡의 <영영>은 일반적이고 평이한 가사이고 또한, 사람들이 듣기에 편안함을 주는 노래로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이별의 고통에서 오는 슬픔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실적인 노랫말은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연어가 맑은 강물에서 알을 낳아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성어가 되어 다시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회귀할 때 모든 고통을 이기고 강에 알을 낳고 죽는다.


어미 연어는 온몸이 찢겨도 미련과 아쉬움 없이 알을 낳기 위한 수억 만리의 긴 항해에 자기의 생명을 다한다. <영영>의 노랫말은 연어와 비슷한 어감을 전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는 반어법적인 노랫말은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강조한 내용이다. 이렇게 쉽고 평이한 노랫말은 나훈아의 가창력에 실려 더욱 찬란하게 햇살처럼 빛난다. 나훈아의 <영영>은 세대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애창하는 노래로서 사랑의 위대함과 진실한 사랑을 일깨워주는 평범 속에서 특이한 의미를 전달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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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가 공연 프로그램 중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이 노래를 삽입하여 불러 나훈아 본인이 애지중지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나훈아의 <영영>은 초반부에 하늘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듯이 어머니의 따스한 가슴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부른다.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엔진의 굉음이 천지를 흔들듯이 가슴 에이듯 부르는 나훈아의 창법은 절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후렴부에 이르러 잊지 못하는 사랑을 다시 환기하듯이 마무리하는 노래는 숙연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진리 속에 위대한 철학이 숨어있듯이 나훈아의 <영영>은 평이한 노랫말 속에 지고지순한 사랑의 위대함이 묻어나고 나훈아의 가창력에서 그 빛은 영롱하게 지워지지 않는 별처럼 반짝이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여기서 <영영>의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영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어떻게 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세월 가도 아직 난 너를 못잊어 하네

아직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나 봐

아마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나 봐

영원히 영원히 내가 사는 날까지

아니 내가 죽어도 영영 못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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