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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Feb 23. 2019

이혼을 생각하세요, 황혼이혼을 생각하세요? 잠깐만요!

이혼이나 황혼이혼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사랑 회복제          

순수하고 맑고 숭고하였던 사랑의 가치가 사라져간다. 시대가 풍요로워진다 해도 지고지순한 사랑만큼 빛나는 보석은 없을 것이다. 

깊고 울창한 산속의 공기 같은 시들이 담긴 두 권의 시집이 있다. 숨 막히는 세상에서 이들 시를 읽으면 숨이 크게 쉬어진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은 아무리 팍팍한 세상일지라도 통한다. 사랑을 잘 지켜간 삶만큼 행복하고 성공한 삶은 없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이 땅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는 어린 자식을 두고 요절한 남편에 대해 절절한 사랑과 애끊는 사연을 적은 망부가(望夫歌)) 작품으로 세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다.

4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쉬운 한글체 문장이라 읽는 이의 가슴을 짜릿한 아픔으로 저리게 했다.

현대시 서정주의 ‘귀촉도’ 역시 대표적인 망부의 노래다.     


오병남 시집 ‘당신은 나에게 선물이었어요’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위의 작품들이 떠올라 휑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우리 인생사에 하고 많은 이별이 있지만 평생을 함께한 배필을 떠나보내는 영결(永訣)만큼 아픈 이별도 없을 것이다.     


올해 68세인 저자는 작년에 남편을 폐렴으로 열흘 남짓한 사이 황망히 떠나보냈다.

말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청천벽력의 생이별인 셈이다. 끔찍이도 금실 좋은 부부였다는데 저자는 사별 300여 일만에 400편이 넘는 글을 썼단다. 

시가 무엇인지 읽어보지도 못했고, 써본 경험이라곤 더더욱 없는 저자로서는 끓어오르는 정을 그냥 적어본 것이라 하였다.

두툼한 대학 노트 네 권에다 연필로 써서 꽉 채운 하나하나의 글들엔 첫사랑 같은 추모의 그리움이 넘쳐흘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자는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남편이 떠나면서 자신에게 새 생명을 준 것으로 받아들인다. 남편이 자신의 영혼으로 들어옴으로써 자신은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저자에게는 그래서 이별이 슬프지만 아프지만은 않다.        


처음으로 적어본 글들이니 다소 표현이 미숙하고 시적 구성이 부족한 면이 있지만, 남편을 향한 절절한 사랑은 그 어떤 명작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     

부부가 너무 쉽게 헤어져버리는 이 시대,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난무한 이 시대,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들의 사랑을 회복시켜 줄 시집이 아닌가 한다. 시를 읽고 있으면, 내 아내 또는 남편에 대한 마음이 절절해지기 때문이다.

오병남의 ‘당신은 나에게 선물이었습니다’, 이 시집이 현대의 많은 부부에게 작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은 나의 우산

-오병남     


떠나가신 당신은

나의 우산이었어요     


이제 우산 없이

비 오는 날을 

견디어야 하네요     


이제 우산 없이

눈보라 치는 날도

견디어야 하네요.         


      

그리워 2     


당신이 그리워

텃밭으로 갔어요    

 

봄 햇살이 그리워

텃밭으로 갔어요     


부추, 두릅, 달래, 마늘

새싹이 돋아     


나물을 한아름

안고 왔어요     


당신을 한아름

안고 왔어요.        


       

냄새로 당신을 만나지요        

  

빨지 않은 옷이

옷걸이에 있네요     


당신을 냄새로

만나려고요     


때 묻은 운동화가

그대로 있네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만나려고요.                  


  

당신은           


당신은 늘 나에게 선물이었어요

외로운 산책길 친구였어요     


배고픔을 채워주는 양식이었어요

아늑한 토담방 아랫목이었어요

어미닭 품이었어요   

  

비 오는 날

당신은 나에게 우산이었어요

어느 오솔길 방긋 피어있는

꽃이었어요.     


지금은 하늘에서 은총 뿌려주는

천사가 되었네요

당신은 나의 별이 되었네요.     


               

당신의 냄새          


당신이 번 돈으로

검정 외투를 샀어요     


돈을 쓸 때마다

당신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과일을 사도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당신의 땀 냄새가 납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의 신을 신어봅니다

그리고 걸어갑니다

당신의 넉넉한 마음을 느끼며

걸어갑니다     


은빛 운동화

초록색 끈

씩씩한 발걸음

빛나는 인생

파릇파릇 움트는 인연

보듬으며 살아갑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내 발을 감싸줍니다

나는 당신을 신고 다니며

행복을 맛봅니다.         


           

또 한 권의 가슴으로 읽는 시집이 있다. 83세 김술남 할머니의 시집 ‘노을을 울리는 풍경소리’이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로 요즘 젊은 시인들이 쓰는 시와는 거리가 멀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하는 어려움도 없고, 애써 묘사력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억지를 부르지도 않는다. 시냇물처럼 자연스럽게 시인의 마음이 흐를 뿐이다. 머리로 읽는 시들이 아니다.


이 시집에도 망부가가 있다. 30년 전에 남편이 떠났지만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사랑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살아생전 마음을 다하여 부부가 키웠던 사랑이 힘이 된 것은 물론이다. 아무 유산 없이 떠나도, 아내에게 남긴 사랑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외롭지 않게 하였던 거 같다.       

    

못 잊어

-김술남     


눈물 가랑가랑 떠나간 당신

눈물 철철 떠나보낸 나

꿈에도 안 보이는 당신

꿈에라도 보고 싶은 나

삼십 년이 훌쩍 넘은 당신을

어제인 듯 생각하는 난

오늘도 소낙비 철철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네.          



내가 사랑한 당신                    


당신이 날 두고 떠나던 날

나는 울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잡지 못해

하늘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실버들 파릇파릇 피어날 때

당신은 떠나갔지요

훌훌 떠나갔습니다

별 헤는 밤은 별들이 그리움을 내립니다     


서른세 번이나 낙엽이 날려도 

아직도 여전히 비는 내립니다

그 사랑!

줄이 끊겨도 

가물가물 연처럼 보내지 못해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언젠가는 당신 찾아

내가 갈 겁니다

당신 포옥 안고

몇 년이고 비를 맞겠습니다.        


       

남양군도       

   

남양군도가 어딘지

사랑하는 내 낭군

사탕수수 베러 갔는데

기다림으로 타는 가슴

사륵사륵 눈 내리는 밤

긴 한숨 따라 흔들리는 촛불

애간장은 내가 타는데

눈물은 네가 흘리네

네 눈물 내 눈물 흘려

한밤을 세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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