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내려온 자식에게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은 세상에서 가장 따듯하다.
밥상을 마주하면 모든 시름이 가시듯 행복하다.
밥알 하나, 국 한 방울 흘려서는 안 될 거 같은 정갈한 밥상, 섬세한 모성이 하느님의 자비로 내려앉았다.
혼자 사는 노인의 부엌에서 금세 주물럭거려 차려지는 밥상은 고단한 도회지의 삶을 치유한다.
먹어도, 먹어도 질릴 수 없는 국이며 반찬들. 썹써구(재첩보다 작게 생긴 것) 국, 조갯국, 갈치, 고막, 나물, 고등어, 젓갈, 등등.
놋그릇이 푸짐하니 정겹다.
자식의 밥그릇을 모시듯 차려놓고 당신 밥그릇 올리는 시간과 거리는 멀다.
수저만 올라 있거나, 젓가락 한 짝만 올라 있거나, 때로는 국만 올라 있거나 때로는 바닥에 놓이기도 한다.
푸다 만, 채우다 만 듯한, 마치 잔반을 담아낸 듯한 당신의 밥과 국그릇이 이가 빠진 그릇 같다.
구순이 가까워도 자식을 나무랄 만큼 심기가 있지만, 밥상 앞에서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한없이 낮추며 모성을 쏟아냈다.
어머니는 밥상에서도 아들의 권위를 지켜주었다.
지금도 아들의 밥그릇과 국그릇은 커다란 놋그릇이요, 은수저와 은젓가락이다.
금방 차려도 밥상에는 언제가 온기가 있었다.
목마르지 않았다.
당신이 차려준 밥상 앞에서 아들은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 앞에서만이라도 기를 펼 수 있었다.
배가 고플 때면 어머니가 떠올랐다.
세상살이가 두려울 때도 어머니 생각이 났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놨을 때도,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때도 당신이 생각난다.
석양이 수평선 끝에 매달려 있을 때도, 서글픈 당신이 생각난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 혹은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을 ‘안갚음’이라 하고, 자식이나 새끼에게 베푼 은혜에 대하여 안갚음을 받는 일을 ‘안받음’이라고 한다.
이제껏 안갚음도, 안받음도 모르는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