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썹써구 요리, 아기반투명조개

by 해드림 hd books

어머니의 썹써구 요리를 보여드릴게요.

순천시 별량면 덕산 마을 앞에는

시시로 밀물과 썰물이 들고 나는 개펄 바다가 있습니다.

물이 가득 차오르는 찬물때가 되면 갯둑 가까이 바닷물이 날름거리지요.

20150802_101021.jpg 고향 마을 앞 천마산 밀물 때
20150802_094121.jpg 물때마다 다르지만 밀물때가 되면 이만큼 찹니다

이 개펄에는

게, 고동, 문저리, 짱둥어, 망둥어, 굴, 맛조개 등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습니다.

20150801_192009.jpg 썰물때 개펄입니다. 여기 개펄은 서해안과 달리 허벅지까지 빠집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 수가 줄었습니다.

개펄 위에서 찬란하게 요동치던 생명체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설레지만

지금 처지를 생각하면 금세 마음이 황량해집니다.

1-썹써구사진.JPG 공식 명칭 아기반투명조개, 이름도 참 예쁩니다

예전보다 줄었긴 해도

여기서 잡히는 어패류 가운데 ‘썹써구’라는 게 있습니다.

섬진강 등에서 채취하는 재첩과는 다르지요.

밀물이 빠져나간 썰물 때가 되면 개펄 강에서 대바구니로 잡는데요.

바구니로 강바닥을 긁어 담은 다음,

물에서 흔들면 썹써구가 들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몇 분이면 한 바구니를 잡았는데….


썹써구는 인근 마을마다 이름이 좀 다릅니다.

섭써구, 썹서구, 썩썰구, 썩쏘구 등으로 불리는데

썹써구를 물로 일어 씻을 때

낱알끼리 부딪치며 나는 소리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문에는 소곤거릴 섭(囁, 聶, 聂)자가 몇 개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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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일어 씻을 때 마치 소곤거리듯 들리는 소리,

내 생각에는 그래서 ‘섭섭구’라는 의성어로 불리는 것은 아닐까 싶답니다.

하지만 예쁜 표준어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아기반투명조개’라는 이름이죠.

크기가 손톱 정도로 작고

씻어놓으면 투명하게 빛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거예요.

아무튼 이 썹써구는 갈수록 양이 줄어

내 고향 일부 지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귀하디 귀한 어패류랍니다.


올여름

노모 홀로 있는 고향 마을로 내려갔더니

언제 잡았는지 동네 어른이 썹써구를 한 바구니나 가져왔더라고요.

누구 자식이든 객지에서 내려오면

무엇이라도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는 게 시골 인심이지요.

20150828_111106.jpg 상한 것은 골라내고

드디어 노모가 썹써구 요리를 준비합니다.

우선 썹써구를 깨끗이 씻어야죠.

씻으면서 상한 것들은 골라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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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은 썹써구를 솥에 넣고 온기가 오르면 슬슬 저어가며 삶습니다.

물론 물도 적당히 들어가 있지요.

고막도 마찬가지지만 완전히 삶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썹써구들이 벌어질 만큼 데치듯이 삶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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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물이 잘 빠지는 바구니에 건져 놓고,

썹써구 삶은 물은 별도로 담아둡니다.

이 간간하고, 진하고, 담백한 국물을 썹써구 국이나 회무침 때 쓰거든요.

어떤 어패류 국물보다 진국입니다.

술 해독에도 최고이고요.

매일 한 대접만 마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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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8_115428.jpg 진국 중의 진국입니다

노모가 익숙한 솜씨로 껍질과 알맹이를 일어 금세 분리를 하네요.

젊은 날부터 숙련해온 기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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썹써구 일어내는 모습을 잠시 동영상으로 구경해 보실래요?^*^

그런데 썹써구를 일어내는 노모의 손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납니다.

세상 모든 세월이 어머니의 손으로 내려앉은 듯하네요.

세월의 풍파를 맞은 노모의 손,

아직은 저 노모의 손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제는 노모의 숨소리조차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들리니

하루하루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니 편안하게 모시지 못해 죄스러울 뿐이지요.

20150828_122621.jpg 껍질에서 알멩이만 분리한 썹써구

알맹이만 분리해 담아 둔 저 썹써구 좀 보세요.

그냥 숟갈로 푹푹 퍼먹어도 좋겠죠?

개펄 강에서 잡은 것이라 저리 씻어내도 육질은 간간해요.

페북2.jpg

썹써구 뽀얀 국에는 주로 호박채를 넣지요.

알맹이 몇 개만 동동 떠있거나 가라앉아 있는 재첩국과는 달리,

썹써구 국은 알맹이를 숟갈로 볼 가득 먹을 만큼

자체 육질 맛을 즐기게 된 답니다.

썹써구로 술안주를 하면 소주병을 밤새도록 쌓아가며 마시게 됩니다.

자, 그러면 어머니의 썹써구 요리를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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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그릇에 밥과 국을 담아 상을 차린 노모의 밥상,

노모가 차린 밥상을 보면 언제가 가슴이 싸합니다.

단 한 번도 자식의 밥과 국처럼

당신의 그것을 반듯하게 담아 올려놓는 것을 본 적이 없네요.

페북3.jpg 숟갈로 퍼먹는 맛, 푸짐하죠
페북4.jpg 회무침입니다

상 모서리 한쪽이 떨어져 나간 듯,

당신의 국그릇과 밥그릇이 한쪽으로 치우친 밥상,

마치 푸다 만듯한 당신의 국그릇과 밥그릇,

그런 당신의 밥상을 받으면 마음이 푸짐하면서도

명치끝이 아프죠.


썹써구 관련 이야기는

제 산문집 [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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