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기울어진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버린 날
가장 어둡고 눅눅한 기억의 밑바닥으로 추락해요
나는 내가 싫어요 가끔 진저리쳐지게 내가 싫어요
내 나이보다 무거운 빚을 안고 빛을 잃은 지옥 속에서
차갑게 등 돌린 세상에게 비굴하게 사랑을 구걸하며
밟히고 또 밟혀 이제 그림자조차 구겨진 채 사는 나
-동훈-
너였니, 혼자 웅크리고 있는 작은 그림자
상처투성이 어린 짐승의 처연한 그 눈빛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삶이 무거운 사람
나도 너처럼 때때로 내가 싫어 견딜 수 없었어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불안하고 두려워
닳아빠진 마음으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살뿐
어른이라는 무게가 등을 짓눌러 휘청대는 오늘도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어, 누구나 다 모르고 살아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가장 슬픈 농담인 이 세상
-지안-
부서진 나를 다시 붙이면 제대로 살 수 있나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 지울 수 있나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주저앉아 울었던 건
누구도 내게 해준 적 없는 말, 듣고 싶었던 말이라
어둠을 밝혀준 작은 성냥불빛은 금세 꺼지겠지만
고마워요, 내 밑바닥 인생을 잠시 따뜻하게 해 줘서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무서웠지만, 이제는 기대어 사람을 믿으며
-동훈-
다 잃어도 조금씩 채워가며 살면 돼
두려워도 이제 눈 감지 말고 바라봐
흐린 불빛을 따라 천천히 길을 찾아가 보렴
부서진 삶도 얼마든지 좋은 삶이 될 수 있어
너에게 등 돌린 건 세상이 아니라 너 자신이었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이 너를 자유롭게 할 거야
네가 너를 버리지 않으면, 신도 너를 버리지 않아
따뜻한 세상을, 너에게 찾아올 행복을 이제 믿어봐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는지... 부디 이르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