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의 시) 미묘한 미침의 묘미

by 제이엘 JL

<미묘한 미침의 묘미>

무거운 잿빛 문을 여니 거기 내가 있었어 나를 나라고 알아보는 나는 누구지? 나는 놀라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문을 닫았어 문 안의 나와 문 밖의 나는 둘인가 하나인가 문이라는 경계가 사라지면 누가 남는 건가 이건 꿈이야 어느 꿈은 그 속에서 그게 꿈인 걸 알잖아 쿵, 쿵, 쿵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 곧 깨어날 거야 여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아무 대답이 없어 다시 문을 여니 아까의 나는 거기 없었어 내가 없음을 알아챈 나는 안도했어 하지만 문 안의 텅 빈 공간너머 다른 문을 향해 걸어가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거기 내가 또 있었어 나는 황급히 그 문을 닫아버렸어 저 문 안의 나는 아까의 나인가 또 다른 나인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지 나는 결코 내가 누군지 모르겠구나 문 안의 나도 문 밖의 나도 어느 내가 나인지 끝내 모르겠구나 그 모름이 나를 삼킬까 두려워졌어 나는 모든 문을 봉인한 후 다시는 어느 문도 열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했어 이제 비로소 나는 이 세계의 유일한 진짜 나라고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어 나였던 모든 나들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암호파일로 저장되었어 영원히 해독되지 않을, 억겁의 침묵 속에 갇혀버렸어 나는 나를 잊고 내가 되었 나를 모르는 나는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아니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함부로 날뛰는 마음에 속아 음대로 살다가 어느날, 죽었어 끝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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