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L의 시) 모르는 모자에서 시작된 이야기

by 제이엘 JL

<모르는 모자에서 시작된 이야기>


길에서 모르는 모자와 마주쳤다

단정하고 얌전하고 꼿꼿한 모자


몇 겹 똬리 튼 생각꾸러미라도 품은 듯

길 한가운데 앉아 오가는 사람을 보는 눈

어떻게 도와줄까 물어도 새초롬한 보랏빛


너를 떨구고 순간이동한 주인은 지금

어느 별에 가 있니 물어보려다 말았다

실수로 모자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작은 인간의 생사를 확인하려다 말았다


모자를 쓰고 가다 갑자기 사라진 사람

그런 뉴스는 없는 TV를 보다 불을 끄고

마치 뭘 잃어버린 듯 뭔가 허전한 밤

거대한 모자 속에 갇힌 나를 상상했다

길 가던 어느 신이 우연히 날 꺼내주길

캄캄한 마음에 처박힌 기도를 꺼내봤다


다음날, 출근길 그 길에서 다시 만난 모자

노려보듯 서있는 등 뒤로 누가 다가왔다

"쓰고 싶으면 써보지 그래요!

뭘 들킨 사람처럼 놀라 자리를 뜨려는 내게

"원하던 곳에 갈 수 있어요, 그 모자를 쓰면"

백발의 청년 아니 노인, 나이를 모르겠는 얼굴

"장난은 아니지만 장난 같아도 한번 믿어봐요."


내 손에 건네받은 보랏빛 모자가 반짝거렸다

'나를 써 봐요,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일투성이'

잠시 망설이다 보랏빛모자 속으로 들어갔다

순간, 정전 같은 암흑, 뭐가 잘 못 되었을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 숨 죽이고 서 있던


그때였다!


눈앞에 있는지도 몰랐던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빛

"어서 와요. 오늘만 해도 세 번째 손님이 오셨네요."

어디인지 모른 채 나는 문 안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그 안에서 본 것에 대해서 절대 발설금지 비밀함구령

그 세계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당신도 모자를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