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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07. 2023

05. 관성으로 살아오던 나, 그대로 멈추기

멈춘 후에야 보이는 것들 중에는 나도 속해있더라.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다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여행 유튜브를 보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여행 유튜버들이 없었다면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들이 떠난 세계 여행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내가 좋아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약이 없었다. 

이대로 우울의 바다에 빠져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지독한 무기력은 호흡을 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게 만들 것만 같았다. 아이들의 미래가 아른거렸고 이제 초등학생이 되는 둘째 딸의 신발을 사러 가야 한다는 어렴풋한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진짜 이거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정말 이대로 두면 큰일 난다. 내 몸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나는 모든 것을 우선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정말 진심을 다해 나에게 시간을 들이고 나를 돌아보는데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것 이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아들방의 책상을 거실로 뺏다. 언젠가 양보했던 내 방(동굴)을 다시 만든 것이다. 경제활동도 외부와의 연락도 모두 끊었다. 어처구니없을 만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나를 멈추었다. 모든 것을 멈추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행동이었다. 


'멈춰! 그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단 멈추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완전히 브레이크를 걸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거울 없이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면밀히 돌아보았다. 다각도로 나의 내면을 꼼꼼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하나하나 뜯어서 나열해 보았다.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정확하고 어렴풋하게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오늘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잠은 잘 잤고 어디 결린 데는 없니? 마음 다친 곳은 없고? 상처받은 건 없어? 분노는 어떻게 관리해? 먹는 건 잘 먹고 사니?


희한한 일이었다. 나를 알고 싶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인해 나는 상처가 아물어 가고 있었다.

잊고 싶은 기억들을 꺼내어 망각의 소각로에 하나씩 집어넣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나의 과거에 매번 발목 잡히는 나의 머릿속 생각들을 지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억력이 좋아 과거의 상처들을 꽤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망각해 내기 시작했다.      


나는 멈추었다. 

나를 돌아보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절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나의 내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마흔셋이 넘어서야 나란 인간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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