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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07. 2023

04. 우울과 무기력은 친한 친구

우울의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만난 변화의 기류

나는 꽤나 예민한 성격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조울증의 어느 지점과 경계를 오가며 살아왔다. 

어느 날은 세상을 뒤집을만한 열정으로 힘차게 살아왔고 어느 날은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힘없이 버텨오기도 했다. 과거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때로는 하루하루 살아 나아가는 데는 괜찮은 원동력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분노를 자양분으로 나아가는 삶이 제대로 흘러갈리는 없지만 말이다.

우울한 기분들을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던 건 어쨌거나 생계 문제였다.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슨 일이든 나서서 해야 했고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언젠가는 끝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처리해 냈다.    

 

이번 우울과 무기력은 질적으로 뭔가 달랐다. 

무엇보다 건강하지 못한 신체 상황과 이른 노쇠화 때문에 나의 에너지와 면역력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다. 단순한 감기만 걸려도 10일을 완전히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30여 일을 고생하며 약과 죽만 먹다시피 해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40대 초반 나이에 1년 12개월 중 3개월을 병상에 있었다는 생각은 나를 비관과 절망에 빠지게 했다. 

큰 병이 곧 오고 나는 얼마 못 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오른쪽 간 부위가 아프면 간암이 걸린 건 아닐까 췌장암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갑작스레 살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정확하게는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앞으로 뭘 하면서 아이들을 부양하고 가족을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삶의 의미가 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울했고 당연히 무기력해졌다. 

다 잃었다는 기분을 침대에 누워 만끽하고 있는데 우울과 무기력이 양옆에 나란히 누워 나의 팔짱을 낀 느낌이었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더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점점 커져만 갔다.


어느 한순간이었다.

나는 절실하게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변화의 기류를 감지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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