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음날 Mar 07. 2023

03. 나의 삶에 던지는 질문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실패를 인정한 나는 평생을 품어온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찰해 본 문제일 것이다.     


‘왜 사는가.’

‘나는 누구지?’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할 시간도 해야 할 명분도 느끼질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의 나처럼 돈과 사업과 건강, 가족의 평화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3살 때 부모님이 8살 때부터 가출을 거듭하다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아원에서 10년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버티며 시간만 보내고 살았다. 

취업을 할 때가 되니 IMF가 터졌다. 

그 후 20여 년간은 단지 돈을 벌기에만 급급했다. 당장에 살 집도 없이 사회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상황이다 보니 생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이번달 급여였다. 

나는 단지 월급을 위해 한 달 한 달 살아오던 사람 그 자체였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닥치는 대로 즉흥적으로 어떻게든 살아왔었다는 게 사실이었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건지 후천적으로 빠르게 끓고 빠르게 식는 사람이 된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끈기가 별로 없는 타입에 속한다. 

젊은 날의 나는 소라게 같았다. 

어디든 직장이 있는 곳 근처로 자취방을 구하다 보니 거처가 항상 불안정했다. 

가방 한두 개를 짊어지고 언제 어디든 빠르게 거처를 옮기곤 했다. 


질문에 때가 어디 있겠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조금만 더 일찍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질문들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라도 이러한 질문의 과정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걸음만 더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또다시 관성에 의해 살아갔을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고 단 하나의 답도 얻어내지 못했다. 

아마도 질문의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왜 사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나에게 꾸준히도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우울증이 왔다. 무기력이라는 친구의 손을 잡고.

작가의 이전글 04. 우울과 무기력은 친한 친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