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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07. 2023

02. 실패를 인정하다.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인생은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인생

얼마간의 은행 빚을 청산하고 나니 가게와 사무실이 사라져 있었다.

모든 집기를 중고 거래앱으로 하나하나 처분하고 그 돈마저 알뜰살뜰하게 모아 단기대출을 갚았다.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뭐든 시작해 지금의 위기를 한방에 만회할 괜찮은 성과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뭘 하려 해도 선뜻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질 않았다.’     


한 해 동안 아주 크고 길게 아프고 나니 건강마저 완전한 바닥에 다다랐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몸이 아프니 정신도 저절로 나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실패를 체감하고 인정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당의 폐업

20년간 해오던 업의 폐업위기

약해질 대로 약해진 건강

위태로운 가정과 아이들과의 유대감 저하

금전적 위기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의 상태를 실패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할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심해졌고 도전정신을 잃어버렸다. 

우울함에 허우적대며 길을 잃어버렸다.

삶의 최초로 실패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했었고 어떻게든 실패의 순간을 회피하려 했었다.

내 사전에 실패는 없다!라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려 들었다.

실패를 인정하면 그건 곧 나약한 사람이 되고 실패자로 나 스스로를 낙인찍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나는 수렁에 빠져 패인이 되고 말 것이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실패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실패가 싫었다. 

나에게 실패란 어떠한 면에서는 죽음의 의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길에 나앉는다는 비유를 나는 정말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었다. 

  

나는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불행했던 과거사를 늘어놓으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하루종일 떠들어 댈 수 있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실패가 곧 나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모든 일을 실패가 없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비관도 없이 희망도 없이 나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었지만 정확하게 나는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확인했다.

실패를 두려워한 나를 억누르며 거듭해서 확인했다.    


확실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무슨 일이든 하나를 제대로 하고 넘어가야 속이 시원해지는 성격적 결함이 여기에서도 발현되었다. 어쨌든 인정하고 나니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나의 첫걸음은 나의 실패를 확실하게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인정! 그래 나 실패했다!"라고 세상에 외쳤다.


인정하고 실의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실패는 나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허하고 헛헛한 기분 또한 감출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했다고 질책할 누군가가 아니라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였다.

하지만 세상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앞뒤가 꽉 막힌 40대 중반의 가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잘했어. 정말 멋지게 좋은 경험 잘 해냈다.'

'뭐 어때. 다음에 뭐든 잘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도 민망했지만 나는 소리 내어 나를 칭찬해 보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유아기 시절 제대로 일어나기 위해 수백 번 엉덩방아를 찧으며 일어난다.

어느 누구도 좌절하거나 실패를 자책하거나 개선 방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무조건 다시 일어났다.

주변에서는 어떠했는가?

무릎의 각도를 개선하고 팔을 이렇게 짚으며 일어나라고 책망하고 개선할 것을 요청했는가?

아니다.

오직 열렬한 칭찬과 응원만 있었을 뿐이다.

잘한다. 잘한다. 하는 벅찬 응원의 소리만을 듣고 끝까지 즐겁게 해낸 결과 태어나 처음으로 뒤뚱뒤뚱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디고 걸음마를 완성한 것이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당신에게 당신과 주변인은 때론 너무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인이고 어느 정도 지식이나 봐온 것이 있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기대를 품는다.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실망부터 하려는 자세를 보이곤 한다.

어쩌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이제 어쩌겠는가.

아쉽지만 무조건 칭찬하고 또 칭찬해줘야 한다.


나는 실패했지만 나를 무조건 칭찬해 줬다.

내 이름을 부르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건 정말 스스로 생각해도 멋지고 잘한 일이었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드디어 실패를 인정한 나를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계절적으로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시작할 즈음 무슨 일이든 시작할 새로운 용기가 스멀스멀 마음속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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