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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21. 2023

총력을 기울이다.

지구야 미안해.

당신은 인생의 어느 한순간 벼랑 끝에 몰려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인생의 어느 한토막 총력을 다해 모든 것을 던져 저항해 본 적이 있는가?


결코 자랑거리 거나 불행 배틀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나는 길거리에 눌어붙은 사탕을 떼어먹은 적이 있다.

물론 더 끔찍한 일도 당했지만 사탕 사건과는 성격적으로 결이 다르다.


'존엄성을 잃어버린 순간'


배고픔은 인간의 존엄성을 내다 버리게 한다.

일주일 내내 울산 태화강 앞 오락실의 물로만 버텨왔다.

먹을 것이 없어 가게 앞의 짜장면 그릇을 탐내보기도 했지만 주변의 눈이 무서워 실패했다.

오락실마저도 주인아저씨의 눈초리가 매서워 자주 드나들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사탕은 마침 오락실 앞에 눌어붙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기만을 고대했다.


빨갛게 눌어붙은 사탕은 마치 나무에 열린 열매처럼 나를 유혹했다.

1주일을 굶어보니 그 사탕 이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써 그런 나를 아름다운 단어들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탕을 바닥에서 떼어먹었다.'


나는 그날의 감정으로부터 37년이 지나갔음에도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나는 사탕을 떼어내며 나의 존엄을 그 오락실 앞 바닥에 붙여두고 왔다.

수치스러운 마음은 아직도 진땀이 흐르게 하고 뒷목이 쭈뼛서게 한다.

혹여나 누군가 보지 않았을까. 마음 졸이던 그때의 상황은 비참한 기분이 든다는 것의 실질적인 표본이 되어주곤 한다.

아무리 비참해도 아직 그보다 비참한 상황은 겪어보질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 비참의 정도가 '자의'냐 '타의'냐의 차이이다.

나는 자의에 의해 그러한 선택을 했고 그 결정에 대한 판단을 아직도 못하고 있다.

과연 그때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만큼 내가 강건했던가?

나는 7살에 불과했다.

일주일을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만 마셔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집에 붙잡혀 들어가면 할머니가 울며 불며 이것저것 먹였지만 나는 또다시 가출을 하곤 했다.


나는 자의에 의해 가출을 하고 배고픔을 선택했다.

나는 나 스스로의 그 자의에 의해 살해당할뻔했고 결국은 바닥의 사탕을 자의적으로 떼어내고 말았다.


비참함의 포인트가 중첩되어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였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당신은 인생의 어느 한순간 벼랑 끝에 몰려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인생의 어느 한토막 총력을 다해 모든 것을 던져 저항해 본 적이 있는가?


마블 영화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비전의 이마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뽑아내는 타노스의 모습을 말이다.

 

'흐흐흐......'


나는 지구에게서 사탕을 빼앗은 아이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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