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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23. 2023

고급 호텔수건 사업이 망한 이유

역시나 빌런은 '나'였고

요즘 브런치 조회수를 보면 독자들은 나의 '망한'이야기에 유독 큰 관심을 보이는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 즐겁게 글로 풀어내고는 있지만 당시에는 죽도록 괴로웠던 기억이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소소한 힐링과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 재미있네요. 오늘도 그런 의미에서 또다시 망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나는 사업을 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어느 정도는 미쳐있는 상태이다. 살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에 상당한 기쁨을 느끼는 유형이기도 하다. 수건 제작 사업은 여러 가지 삽질 중에 그나마 꽤나 성과도 있었고 나름 제대로 했었던 일이다.


장소임대 플랫폼, 여행캐리어 추억공유 플랫폼, 세탁세제사업, 건조볼 수입, 쌀국수 식당 등 참 많이도 벌리고 많이도 망했다. 그중 여러 가지 아주 다양한 이유로 포기했던 '고급 호텔수건 제작' 사업을 대차게 말아먹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략의 이야기이니 너무 역사적인 고증이나 현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보시라.


간략하게 주워들은 우리나라 수건의 역사

못 사는 나라가(개발 도상국이라는 표현은 이제 좀... 진부하달까) 대부분 그러하든 고강도 저효율의 산업을 우선 유치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게 섬유 방적 분야일 것이다. 6.25 이전 이북과 서울, 경기에 몰려있던 수건제조 공장들은 전쟁이 나자 모든 기계들을 짊어지고 피난을 내려왔다. 기계가 무거우니 가다가다 도저히 못 가고 대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공장 견학 중 찍은 복잡하고 힘든 작업환경


그래서 대전과 대구에 섬유와 수건 공장들이 크게 있다고 한다. (카더라지만 꽤나 신빙성이 있다.)

이는 알만한 대형 수건제작 공장의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전쟁 이후 수건은 사치품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돌잔치나 결혼식에 답례품으로 양말이나 수건 등의 선물로 성의를 표하는 것이 오늘날까지 굳어진 것이다.


'수건은 돈 주고 사는 거 아니다.'


이런 인식은 그 연유가 뿌리 깊을뿐더러 어지간해서는 개선의 이유 또한 보이지 않는다. 수건은 장롱에서 무한 생성되는 존재쯤으로 인식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수건에 대한 인식

그렇게 선물로 받기 시작한 수건은 경조사 어디를 가나 가장 많이 받는 답례품 1위이다. 만만하고 부피가 커, 풍성하고 메시지를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육대회, 고희연, 환갑잔치, 개업식, 돌잔치 등 떡을 돌리는 거의 모든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수건을 제작하곤 한다. 최소 100장에서 수천 장을 제작해 모자라지 않도록 하다 보니 어느 행사장에는 수백 장이 남기도 한다. 그런 수건들은 결국 누군가의 장롱으로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근검절약 정신이 콜라보를 이루었다. 화장실 선반 안의 수건을 꺼내어 보라. 보통 5년~ 10년 사이의 수건도 많을 것이다. 이것은 아낀다는 '사고'와는 맥락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수건을 쓰다 쓰다 걸레가 될 것처럼 해지게 되면 드디어 반으로 쭉 잘라 걸레로 쓴다. 예전에는 그 걸레조차 2~3년은 쓰곤 했다. 없이 살던 시절의 절약정신이기에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수건을 함부로 버리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힌 것이다.


별로 유의미하진 않겠지만 수건에 대한 인식과 현상을 조사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칼럼이나 논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건은 대부분이 80cm * 40cm 사이즈를 가진다. 중량은 보통 140g 전후라고 보면 된다. 소재는 면 소재가 가장 흔하고 뱀부얀외의 특수 소재도 가끔 쓰인다. 단가면에서 면소재가 가장 저렴하고 전통적이기 때문이다.


사이즈와 중량은 수건의 두께와 흡수력을 좌우한다. 새 수건은 도톰하면서 물기도 쫙쫙 빨아들이지만 헌 수건은 머리의 물기도 잘 말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답례품으로 받은 수건들은 대부분 저가형이다 보니 사이즈도 중량도 개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개인의 몸 사이즈와 머리의 길이가 숱이 다른데 그런 기준은 고사하고 보편적인 기준에도 한참을 못 미치는 수건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키가 179cm에 머리숱도 많은 편이라 매번 수건을 두 장씩 쓰곤 했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장롱에는 수많은 수건들이 대기 중이고 가장 좋은 수건은 아끼고 아껴 언젠가는 쓸 것이기에 가장 가볍고 안 좋은 재질의 수건을 먼저 쓰는 경우도 많다. 왜 안 좋은 수건을 먼저 쓸까?


수건의 수명은?

수건의 수명은 흡수력이 다 떨어지는 시점이다. 그 시점이 언제냐고?


놀랍게도 6개월에서 1년 사이면 세탁에 의한 섬유 훼손으로 수건으로써의 기능은 사실상 사라진다. 


사용 후 1년이 지난 수건은 흡수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섬유조직이 거칠어져 피부에 좋지 않다. 세균 증식에도 용이해져 다양한 세균 노출 및 질병의 감염도 또한 높아진다.


우리나라 모... 아니, 나부터가 수건은 10년씩 쓴다. 서구권에서는 이사를 가거나 집들이를 할 때 수건을 한꺼번에 바꾼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수건을 만들어 판매하고 싶었다. 최고급 면사인 수피마 원사를 알아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샘플링을 했다. 이집트, 미국, 포르투갈, 터키에서 생산된 수건을 찾아보기고 주문해보기도 했다. 돌고 돌아 결국은 국내의 제작 실정에 맞는 뱀부얀 수건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1미터에 45cm 사이즈에 중량만 250g에 이르는 아주 좋은 뱀부얀 수건이었다.


망한 이유

'아무리 좋아도 수건은 수건이다.'

결론적으로 애석하게도 초도물량 3,500여 장을 팔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가장 큰 문제는 사장인 '나'였다.


나는 수건의 수명이 1년 남짓인 것을 홈페이지와 상품 소개서에 적어두었다. 정작 5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제작한 수건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수건의 대중적인 인식을 사장인 나조차 개선하지 못하면서 소비자에게 '수건을 매년 바꾸자'는 캠페인을 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공장에는 특별 사이즈를 요청한 터라 납기도 길었고 초도 물량도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꽤나 컸다.

부피가 커서 어지간한 작은 방은 가득 차는 부피이다. 특수 사이즈라 제작단가가 높다 보니 자연히 소비가격도 높아지게 되었다. 손해를 보고 팔 수는 없었지만 장당 7,500원 정도의 수건이라 하면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코로나가 지난 지금은 제작 단가도 훨씬 오르고 제작할 환경도 되지 못한다.


수건에 대한 소비는 먹고사는 것과는 무관한 일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외식비중을 줄이고 옷이나 사치품, 기호식품을 줄인다. 수건은 소비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가 되어있다.


'이번 해의 수건 구입 비용은 '000원'이라는 형태의 인식은 없지 않은가.'


애초에 책정되어 있지 않은 금액을 무슨 수로 '절약'한단 말인가? 톱밥을 톱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1. 보통의 인식 상 수건은 답례품 시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 수건을 돈 주고 산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어느 집에나 새 수건 10장쯤은 김장김치처럼 저장이 되어있다.

3. 비싼 수건일수록 버리기 아깝다.

4. 사장인 나도 내 수건을 버리지 못한다.

5. 망했다.


수건 관리 꿀팁을 전달하며.


망한 이야기는 장황했지만 별달리 득이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수건을 공부하며 쌓은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 대로만 수건을 관리한다면 가족들의 피부건강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1. 수건에는 섬유유연제를 절대 절대! 쓰면 안 된다. 올이 풀려 기능성이 거의 제로에 수렴하게 사라진다.


2. 수건만 단독 세탁해야 하며 소량 5장 ~7장만 세탁하고 세제는 중성세제만 조금 넣고 세탁해야 한다. (수건전용 세탁모드 선택)


3. 햇볕에 직사광선으로 말라서 딱딱한 질감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수건의 수명이 '0'제로라는 뜻이다. 피부에 좋지 않으며 세균 증식이 쉽다. 수건은 건조기 혹은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

 

4. 수건의 수명은 길어야 1년이다. 삶의 질을 위해서 1년 중 하루 날을 정해 집안의 모든 수건을 교체하는 것이 좋다. (예: 6월 1일 이라든가)


5.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뱀부얀 수건이 가격대비 기능성이 가장 뛰어나다 섬유 자체에 항균력도 있고 흡수력도 월등하다.


6. 수건으로 피부를 벅벅 문지르며 물기를 닦는 습관은 좋지 못하다. 톡톡 두드리듯 물기를 흡수해야 한다.


*요즘 들어 오래된 수건을 자주 버리는 편입니다. 집 근처에 셀프 세차장이 생기면서 세차를 할 때마다 헌 수건을 반으로 잘라 물기를 닦아내고 버리지요. 거의 구멍이 뚫리기 직전의 수건이긴 합니다.


내가 팔던 미칠 듯이 좋았던 수건... 어디에서도 이런 수건은 이제 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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